시바난다 사라스와티 (Sivananda Saraswati)




《꾼달리니 딴뜨라》의 저자 스와미 사치다난다 사라스와티(Swami Satchidananda Saraswati)<20 크리야 비전>을 자신의 구루 스와미 시바난다 사라스와티(Swami Sivananda Saraswati)로부터 전수 받았다. 그러나 스승 시바난다가 어떻게 『20 크리야 비전』을 입수했는지 정확하게 세상에 밝힌 바는 없다.




마하무니 바바지님은 스와미 교단을 중건(重建)한 상카라[각주:1]와 중세의 유명한 대사 카비르에게 크리야 요가를 전수해 주었다고 라히리 마하사야와 스와미 케발라난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 라히리 마하사야(Lahiri Mahasay 1828. 9. 30 ~ 1895. 9. 26)

▷ 스리 유크테스와르(Sri Yukteswar 1855. 5. 10 ~ 0936. 3. 9)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Paramahansa Yogananda 1893. 1. 5 ~ 1952. 3. 7)


스와미 시바난다 사라스와티(Swami Sivananda Saraswati 1887~1963)[각주:2]



  스와미 시바난다는 1887년 남 인도의 타밀 나두에서 탄생했고 본명은 쿠푸스와미입니다. 그는 의사가 되어 말레이시아에서 일했는데 1924년 인도로 돌아와 구루인 스와미 비슈와난다 사라스와티를 만나 그와 함께 몇 시간을 보냈는데 스와미 비슈와난다는 그를 출가시켜 주었습니다.

그후 스와미 시바난다는 당시 숲으로 둘러싸여 있던 리시케시로 가서 영적 수행에 집중하는 동시 계속 환자들을 돌보았고 1927년 락시만 줄라 근교에 무료 진료소를 열었습니다.

인도 리시케시에 있는 유명한 시바난다 아쉬람의 신성한 삶 협회 회장 스리 비말라난다 사라스와티는 1953년 23세의 나이에 이곳에 왔는데 1963년,입적하기 전 자신의 구루 스와미 시바난다를 10년간 모셨습니다. 그 후 그는 스와미 시바난다의 계승자 스와미 사치야난다 사라스와티에 이어 두 번째 협회 회장이 되었습니다.

스와미 비말라난다 지는 스와미 시바난다와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924년 의사로서 그의 이름은 쿠푸스와미 박사였는데 이곳에 오셔서 약 12년 동안 고행하며 신을 체험하였고 그 후 전세계에 신성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1936년 그는 신성한 삶 협회를 설립해 리쉬케쉬에 이 아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 아쉬람은 자발적인 기부로 운영됩니다. 어떤 비용도 걷지 않아요. 매달 두 권의 잡지가 나오는데 『신성한 삶』과 『요가 베단타』입니다. 이 협회의 창립자인 스와미 시바난다는 다방면의 250여권의 저서를 집필하셨습니다. 박티(헌신)요가와 즈나나(지혜)요가,건강에 관한 책이예요. 또한《자연 치유의 실제》에서서 단순한 자연 법칙을 지킴으로서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소개하셨어요.

스와미 시바난다님께서 40년간 이 일을 했고 1963년에 경이라는 칭호를 얻으셨습니다. 그 후엔 우리를 떠나셨고 제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이 아쉬람이 계속 운영되어 왔습니다. 현재에도 이곳은 그 이상을 전파하고 있어요

스와미 시바난다는 신을 향한 무아의 봉사와 명상,깊은 철학적 탐구를 병행하는 것을 안내하셨습니다. 우리가 좋지 않다면 남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는 이렇게 노래했죠 "봉사하고 사랑하라 명상하고 깨달으라 선해지고 선행을 하며 친절하고 자비로워져라 내가 누군지 묻고 신을 알고 자유로워져라. 우린 이 육체가 아니며 마음도 아니다 우린 불멸의 자아이다 스리 람 자야 람 자야 자야 람 옴 스리 람 자야 람 자야 자야 람"

매일 저녁에 우린 함께 모여 스와미 시바난다 스승은 이렇게 기도하며 매일의 모임을 마쳤습니다 그는 이처럼 충고하셨지요 "오! 인간은 살과 육신의 새장이 아니라 불멸의 영혼이다 이것이 그대의 본성이다 신성은 우리의 본성이다" 이것을 통합적 요가를 통해 발견해야 합니다

그는 그 본성을 박티 요가와 라자 요가, 즈나나 요가와 카르마 요가를 통해 끌어냈고 반드시 히말라야 동굴에 가서 명상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죠. 신이 안배한 어디서나,어떤 환경에 속해 있든지 그 환경을 통해 진보해야 합니다. 매일의 행동을 통해서… 매일 아침엔 많은 일을 해야 하죠. 일어나서 옷을 빨고 집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다양한 행동과 팔다리와 장부를 통한 모든 행동을 예배로서 신께 바칩니다. 모든 의무를 이러한 정신으로 수행하면 신성을 향한 예배가 되고 요가가 되며 당신은 요기가 되는 겁니다. 이것을 깨닫고 세상에서 이렇게 수행해야 합니다.

명상에 관해 스와미 시바난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명상은 구원,혹은 해탈을 얻기 위한 유일하며 고귀한 길입니다. 명상은 모든 아픔과 고통을 없애며 삼정 오욕과 번뇌를 없앱니다 명상은 신과의 합일을 체험하게 하며 신과 하나임을 깨닫게 합니다. 명상은 영원한 축복과 영원한 평화의 차원으로 높이 날아오르도록 해주는 비행선입니다.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신비한 사다리이며,수행자를 브라만의 불멸의 집으로 데려다 줍니다."

스와미 시바난다는 선행을 장려했습니다 시바난다는 자선 병원을 열어 병자들을 무료로 치료했으며 브라마푸리 식민지령의 나병환자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했지요. 스와미 시바난다 지는 의사였어요 우리가 여기 왔을 때 구걸하는 나병환자들이 리시케시에서 락슈만 줄라까지 즐비했지요 스승은 말했죠. "구걸을 그만두시오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리다." 스승님께서 만드신 보금자리는 세 곳으로 하나는 브라마푸리에 있어요

설비가 잘 된 나병 병원입니다. 지금 그들에겐 직물공장이 있죠. 태양열에서부터 태양열 시스템까지 모든 걸 갖췄어요. 그들은 세 곳에서 자급자족합니다. 또한 시바난다 보호소가 있어 거리의 집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 돌봐줍니다. 여기엔 병원도 있어요. 모든 치료와 의약품 등 모든 것이 무료입니다. 비용을 요구하지 않고 60년 동안 자발적인 기부로만 운영해 왔습니다. 어떤것도 요구하지않죠. 돈이 있어도 좋고 돈이 없어도 모두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우린 수도승이니 나무 아래 앉아 명상하면 되니까요. 아쉬람에선 채식만을 합니다 사실 리시케시는 채식과 금주가 공식화되었고 상점에선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돼 있지요. 채식은 요가와 건강에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엄격한 고행을 했던 옛 수행자들은 체력이 좋았고 혹독한 고행도 견딜 수 있었어요. 한 다리로 서 있거나 호흡식을 하거나 그들은 우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는 기술을 알았어요.

우린 잊어버렸지요 그들은 늘 과일과 채소만 먹었어요. 그 가치를 알았죠. 완전 채식을 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면,병원에 갈 필요가 없고 병원비를 낼 필요도 없이 늘 건강할 것입니다. 인도 뿐 아니라 전세계로부터 시바난다 아쉬람에 온 수행자들은 스승을 모신 장소에 와서 평화로운 분위기에 잠기며 그의 가르침을 공부합니다

그는 의학을 공부했기에 노인과 환자의 심정을 알았어요. 신께 봉사하듯이 환자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 신에게 봉사하는 것이니까요. 그 때문에도 우리는 이곳에 와서 배웠지요. 스와미 시바난다님은 전 생애를 가난한 이와 환자들을 돌보며 보냈고 남을 위한 봉사는 제 삶의 목표예요.

여기 온지 15년 되었어요. 기도하고 신을 기억하기 위해 왔죠. 저 분은 제 그루이자 그의 구루이신 스와미 시바난다예요. 전 정말 만족해요.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제 목적을 이뤘어요. 마지막으로 스와미 시바난다의 강연 '자아를 깨닫는 실제적 방법'의 일부를 보내드립니다.

"자아를 깨닫는 실제적인 방법은,그대는 불멸의 자아요 신성입니다 그에 따라 사십시오. 신성한 본성을 느끼고 깨달으십시오. 당신은 당신 운명의 스승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슬픔과 장애,고난에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고 내면의 영적인 힘을 일깨우십시오. 당신 안에는 고갈되지 않는 무한한 힘과 지식이 있습니다. 근원으로 향한 길을 배우십시오. 내면에 깊이 들어가서 불멸의 신성한 물에 잠기십시오. 신성한 근원에 가면 당신은 재충전되며 새롭고 활기로 넘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으십시오. '나는 불멸의 자아,혹은 아트만'이다."








스와미 시바난다 사라스와티(Swami Sivananda Saraswati)





스와미 사치다난다 사라스와티 (Swami Satchidananda Saraswati)



스와미 사티다난다 사라스와티 (Satchidananda Saraswati 1944-2002)는 1914년 남부 인도 타밀 나두 주(州) 포다누르 인근 작은 마을 코임바토레에서 출생한 라마스와미 군데르 (Ramaswamy Gounder)이다. 아버지 칼리야나순다람 군데르와 어머니 스리마티 벨람마이는 경건하고 신심이 깊어서 집에는 항상 시인, 음악가, 철학자, 점성술사들이 모였고 지나가던 수도승과 성자들이 숙식하고는 했다.


부부는 집에 온 성자들을 보면서 저런 영적인 성품을 지닌 고결한 자식을 얻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었다. 그래서 부부는 함께 60 마일을 여행해서 사두 스와미갈의 아쉬람으로 갔고 그로부터 신성한 빛을 불러오는 만트라를 받았다. 어머니 스리마티는 소망하는 고급한 영혼을 낳기 위해 수개월 동안 끊임없이 만트라를 외웠고 그 결과 사티야난다가 태어났다.


사티야난다는 유년시절부터 영적인 성향이 강했고 신에 대해 매우 헌신적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농업 대학을 졸업한 후 모터사이클 수입 판매상 삼촌의 회사를 다니다가 23세 때 인도 국영 전기공사의 관리가 되었다. 이 무렵 그는 결혼을 했고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결혼 5년 후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자 그는 자식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인도 전역으로 영적인 여행을 떠났다. 그는 여러 사원에서 명상하고 많은 영적 교사들 곁에서 공부했다.


진정한 스승을 찾는 과정에서 그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아쉬람에 머물며 공부했지만 라마나 마하리쉬가 죽기 전 아쉬람을 떠나게 된다. 그 후 히말라야 성스러운 도시 리쉬케시로 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마침내 그의 구루 시바난다를 만나게 되었다.


1949년 시바난다는 그를 스와미 교단에 입문시키고, 그에게 ‘사치다난다 사라스와티(Satchidananda Saraswati)’라는 법명을 내렸다. 시바난다는 그를 수년 동안 가르친 뒤 인도 각지로 보내 요가의 지혜를 전파하도록 했다.


1953년 사치다난다는 스리랑카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 첫 번째 사치다난다 아쉬람이 세워졌다. 그는 거기서 13년 동안 가르쳤다. 그러던 중 1966년, 미국인 제자들의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하였다. 그는 이 방문을 계기로 미국으로 이주해서 정식으로 시민권을 얻게 되었고, 그 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치다난다는 지상의 모든 인종과 종교 사이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의 모토는 ‘진리는 하나이지만 길은 많다’이다. 그는 영속에서 인간들 모두는 하나라고 말하며 영적인 일체성을 가르쳤다. 사치다난다는 하타요가, 즈나나 요가, 박티 요가, 카르마 요가, 만트라 요가 등을 하나로 종합하여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이런 독특한 요가 스타일을 ‘인티그럴 요가(Integral Yoga)’라고 불렀다. 종합 요가 또는 통합 요가라는 의미이다. 그는 인티그럴 요가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인티그럴 요가는 한 인간의 모든 차원들(육체, 마음, 영 등)을 계발하기 위한 다양한 수련법들을 융통성 있게 종합한 것이다. 그것은 한 인간의 완전하고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다양한 요가의 갈래들을 통합한 과학적인 체계이다.”



그가 설립한 인티그럴 요가회(Integral Yoga Institute)는 전 세계적으로 40개가 넘는 센터들을 가지고 있다. 사치다난다의 아쉬람, 요가빌(Yogaville)은 버지니아의 버킹엄에 있다.


1986년, 그는 세계 평화와 종교 화합을 기원하면서 요가빌에 ‘LOTUS’(진리의 빛 유니버설 쉬라인Light of Truth Universal Shrine)를 건립했다. LOTUS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표방하면서 세계의 모든 종교들을 위해 봉헌되었고 전 세계의 다양한 종교 제단들이 있다. LOTUS는 어떤 종교를 믿든 누구나 와서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50년 이상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가르침을 펴던 그는 2002년 남부 인도 타밀 나두에서 마하사마디에 들었다.

  1. 역사적으로 상카라의 스승은 고빈다 자티(Govinda Jati)로 바나라스에서 바바지로부터 크리야 요가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본문으로]
  2. 스와미 시바난다는 1887년 타밀 나두, 파타마다이에서 태어났다. 말라야에서 내과의사로서 활동한 후에 1924년 리쉬케쉬로 가서 스와미 비슈와난다 사라스와티에게 다슈나미 산야사(Dashnami Sanyasa)에 입문했다. 그는 요가를 수련하도록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성스러운 삶으로 이끌고자 인도 전체에 걸친 광범위한 여행을 했다. 그는 1936년 리쉬케쉬에 Divine Life society, 1945년 시바난다 아유르베딕 약국을, 1948년 요가베단타 포레스트 아카데미, 그리고 1957년 시바난다 안과병원을 설립했다. 그의 생애동안에 수천의 제자들과 전세계의 열망을 지닌 사람들을 이끌었고 200권 이상의 책을 저술했다. 또한 의학박사로서 요가의 현대의학적 실험을 통해 요가의 가치 설명에 기여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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