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열두 번째 이야기
2015년 5월 28일 (목)
중양절 조촐한 술자리에서

대궐에서 성은을 받은 날이요
국화 띄운 술을 마시는 때로다
한 집안 대여섯이 한데 모여
다 같이 태평성대를 즐기누나

부인의 차운시 

옛날 남북으로 헤어져 있을 때
어찌 이런 날이 올 줄 알았겠소
맑은 가을날 좋은 때 모였으니
천릿길이 마치 기약한 듯하오

紫極承恩日
黃花泛酒時
一堂親五六
同樂太平期



昔日分南北
那知有此時
淸秋佳節會
千里若相期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송덕봉(宋德峯, 1521~1578) 
「중구소작(重九小酌)」, 「부차운 덕봉부인송씨호(附次韻 德峯夫人宋氏號)」 
『미암집(眉巖集) 권2』


   


  예전 학자들의 글을 보면 벗이나 동료, 스승, 때로는 부형이나 자제 같은 가족과 시를 주고받는 경우는 많지만 부인과 시를 수창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혹 안방에서 부인과 장난스레 시를 주고받더라도 이를 문집에 함께 싣는 일은 더더욱 드문 예이다. 그런데 미암집을 보면 부인의 시뿐만 아니라 부인이 남편에게 보낸 꾸짖는 듯한 내용의 편지도 아주 떳떳하게 실려 있다. 당대의 여장부라 일컬어질 정도로 문장과 절행이 뛰어난 송씨 부인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첩도 당신에게 잊을 수 없는 공이 있으니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당신은 몇 달 동안 혼자 지낸 것을 가지고 매양 편지마다 구구절절 공을 자랑하는데, 60이 가까운 몸으로 그렇게 홀로 지내는 것은 당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크게 이로운 것이지 첩에게 갚기 어려운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나 당신이 도성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몇 달이라도 혼자 지내는 것은 또한 보통 사람들이 어렵게 여기는 일이기는 합니다. 
  저는 옛날 어머님의 상을 당했을 때 사방에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고 당신은 만 리 밖에 귀양 가 있어 그저 하늘을 울부짖으며 통곡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극한 정성으로 장례를 치러서 남들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었고, 사람들도 분묘나 제례가 비록 친자식이라도 이보다 더 할 수 없다고들 하였습니다. 삼년상을 마치고 또 먼 길을 나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당신을 찾아간 일은 누가 모르겠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지성을 바쳤으니 이것이야말로 잊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대가 몇 달 홀로 지낸 일과 나의 몇 가지 일을 비교한다면 그 경중이 어떻습니까?……”(미암집 권7 일기 1570년 6월 12일)

  미암 유희춘은 26세 과거 급제 이후 승승장구하다가 35세(1547년) 때 양재역벽서사건에 휘말려 함경도 종성 땅으로 유배 가게 된다. 이후 20여 년간의 유배생활 끝에 사면 받아 풀려났으니 이 때 나이가 55세(1567년)였다. 부인인 송씨는 담양의 명문가인 홍주 송씨(洪州宋氏)인데 송준(宋駿)의 둘째 딸로 태어나 16세(1536년)에 유희춘과 혼례를 올렸다. 미암이 유배 간 뒤 홀로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시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른 후 천 리 길을 떠나 남편의 유배지까지 홀로 찾아간 일화가 전한다. 

  위의 편지는 미암이 서울에서 승지, 부제학 등을 역임하며 홀로 지내던 때인데 아마도 시종하는 여자를 들이지 않았다고 부인에게 으스대는 편지를 보내곤 했던 듯하다. 이에 대해 내가 당신에게 해준 일을 생각하라는 부인의 일갈(一喝)은 당차고 해학이 넘치면서 부부간의 신뢰가 듬뿍 느껴져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이런 고난의 세월을 함께 한 부부이기에 중양절 술잔을 나누며 옛일을 회고하는 감회가 더 깊었으리라.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고 있다. 예전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수직적인 관계가 가족의 중심적인 관계였다면 이젠 부부가 가정의 핵심이 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기억해주며 상대의 밑바닥까지 환히 알고도 포용해주는 관계, 인생의 반려자라는 것은 함께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빛나는 소중한 존재이다.

 

글쓴이 : 김성애(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Posted by 聖枝 성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