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백여든 번째 이야기
2015년 6월 22일 (월)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야 한다

[번역문]

  백 년 사이에 풍속이 날마다 쇠퇴하여 꼭 스승을 집으로 데려와 먹여 주면서 자제를 가르치게 한다. 자제들은 평소 교만한 데다 또 먹여 주는 권세를 믿고 스승을 대한다. 스승은 권위를 세울 수가 없어 꾸짖지도 못하고 회초리를 들지도 못하며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자제들이 스승을 낮추어 보면서 가르침을 받으니 학업에 진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또 스승이 힘쓰지 않는다고 탓한다. 이것은 썩은 고삐를 주고서 사나운 말을 몰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스승 노릇을 하지 않으려 하고, 스승 노릇하는 사람은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일 뿐이다. 

[원문]

百年之間, 風俗日下, 必延師於室而豢之, 以敎其子弟. 彼子弟素驕, 且挾其豢之之勢以臨師, 師亦無以爲威, 不施訶責, 不施捶楚, 特爲之役而已. 子弟旣卑師而受其旨, 固無以進業, 則又以是責師之不力, 是猶授朽索而御悍馬耳. 是以賢者不輒爲之師, 其爲師者特有求者耳. 

성해응(成海應, 1760~1839), 「사설(師說)」,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권10

  
  조선 시대에 숙사(塾師)라는 직업이 있었다. 남의 집에 살면서 그 집 자제들을 가르치는 일종의 입주가정교사이다. 재주가 있더라도 신분에 하자가 있는 서얼과 여항인, 또는 과거에 연달아 낙방한 끝에 진출을 포기한 사대부가 생계를 위해 숙사 노릇을 하였다.

  숙사의 입장에서 학생은 고용주의 자제이므로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꾸짖거나 회초리를 들 엄두도 내지 못한다. 숙사에게 스승의 권위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학생도 숙사를 존경하지 않는다. 마치 지금의 학원 강사나 과외 교사처럼 이해관계가 다하면 미련 없이 관계를 끊었다.

  원래 스승은 직업이 아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아무런 물질적인 대가를 받지 않는다. 전통적인 사제 관계는 오로지 존경과 신뢰로 맺어졌다. 스승의 권위가 높았던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숙사와 학생의 관계는 이러한 전통적인 사제 관계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이들의 관계는 계약관계이다. 학생은 숙사에게 수업을 받고, 숙사는 그 대가를 받는다. 이러한 계약관계에서는 스승의 권위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현대의 사제 관계 역시 기본적으로는 계약관계이다. 교사는 엄연한 하나의 직업이며, 학생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교권의 실추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교사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그러한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바람직한 현대적 사제 관계와 교사의 위상을 재정립할 때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사제 관계를 상징하는 말이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우리 고전에는 이런 말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승을 존경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고전에서는 ‘스승의 그림자’와 비슷한 말조차 찾아볼 수 없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당(唐)나라 승려 도선(道宣)의 저작 『교계신학비구행호율의(敎誡新學比丘行護律儀)』(이하 『교계율의』)에 처음 보인다. 이 책의 「사사법(事師法)」에 “스승을 따라 걸어갈 때는 웃거나 떠들면 안 되고,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일곱 자 남짓 떨어져야 한다.[若隨師行, 不得喧笑, 不得蹋師之影, 相距可七尺餘]”라는 내용이 있다.

  스승이 제자에게 의발(衣鉢)을 전수함으로써 학통이 이어지는 불교의 사제 관계는 극도로 엄격하다. 출가하여 세속과의 인연을 모두 끊은 승려에게 스승은 곧 부모이자 임금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불교의 계율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교계율의』라는 책은 그다지 인기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중국에서도 널리 읽히지 않았으며,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기록도 없다. 그렇다면 『교계율의』에 실려 있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우리의 전통적인 사제 관계를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고전 가운데 『동자교(童子敎)』라는 책이 있다. 제목 그대로 어린이의 교육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의 편찬자와 편찬 시기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다. 9세기경 일본 천태종 승려 안연(安然)이 지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 다만 가장 오래된 사본이 14세기 중엽의 것이므로 그 이전에 나온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제자는 일곱 자 떨어져서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弟子去七尺, 師影不可踏]”라는 말이 있다. 『교계율의』의 내용 그대로이다.

  『동자교』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수백 년 동안 초학자용 교재로 널리 쓰였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말은 자연스레 일본의 속담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일곱 자’가 ‘석 자’로 변하였다. 20세기 초에 출판된 일본 속담 사전에는 “석 자 물러나서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실려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저명한 중국학자 요시카와 고지로(吉川幸次郞, 1904~1980)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비록 『교계율의』에서 유래하였으나 오로지 일본에서만 널리 쓰였으므로 일본 속담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타당한 주장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해방 직후의 신문에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석 자 물러서서’라는 말이 앞에 붙어 있다. 이러한 사례는 1970년대까지 계속 찾아볼 수 있다. 만약 『교계율의』를 인용하였다면 ‘일곱 자 물러서서’라고 하였을 것이다. 일본 속담을 인용하였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결국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일본 속담이며,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로 들어와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아무리 일본 속담이라지만 옳은 말이라면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일제강점기는 교사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다. 문제는 그 권위가 폭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무단통치 시기의 교사는 제복을 입고 칼을 차고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학교가 군대와 다름없던 시절이다. 체벌은 말할 것도 없이 심했다. 교육 현장에 회초리질 이상의 체벌이 등장한 것이 이 무렵이다. 학생은 교사를 두려워하고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스승의 그림자도 감히 밟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체벌을 금지하기 때문에 교권이 추락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교권은 존경과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지 폭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일제강점기와 그 뒤를 이은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면 스승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스승과 제자는 거리를 좁히고 교감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요즘은 많은 교사가 학생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도 친구 같은 교사를 좋아한다. 그러면 교사의 권위가 더 추락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기우이다. 부모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은 권위적인 부모를 멀리하고 친구 같은 부모에게 마음을 연다. 부모와 친구처럼 가깝게 지낸다고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녀들은 친구 같은 부모를 더욱 존경하고 사랑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야 한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선다면, 교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장유승글쓴이 : 장유승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 주요저역서
    - 『일일공부』, 민음사, 2014
    - 『동아시아의 문헌교류 - 16~18세기 한중일 서적의 전파와 수용』, 소명출판, 2014(공저)
    -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글항아리, 2013(단독)
    - 『정조어찰첩』, 성균관대 출판부, 2009(공역)
    - 『소문사설 -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휴머니스트, 2011(공역)
    - 『승정원일기』(공역), 『월정집』(공역) 등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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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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