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백예순여섯 번째 이야기
2015년 7월 2일 (목)
남 탓하기는 쉬워도
성인의 도는 자기를 탓할지언정 남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聖人之道 責己不責人 
성인지도 책기불책인

기정진(奇正鎭, 1798~1879)
 「답안윤극(答安允克)」 
 『노사집(蘆沙集)』 권8




김홍도의 기우도강도

  
  윗글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노사 기정진 선생이 안윤극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서두에서 이른바 ‘책기(責己)’의 자세를 강조한 구절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언가 나쁜 일이 닥치면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애써 남의 탓으로 돌리기 십상인데, 노사 선생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살피고 돌아볼 수 있어야 이른바 ‘성인의 도’를 실천할 수 있다고 언급했죠. 하지만 ‘성인의 도’라는 고차원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니만큼 ‘책기’는 실천하기 쉽지 않은, 매우 까다로운 덕목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책기’를 나름대로 잘 실천해 나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 송(宋)나라의 학자인 충선공(忠宣公) 범순인(范純仁)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죠.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탓하는 데에는 명석하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흐리멍덩한 법이다. 너희가 다만 항상 남을 탓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탓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 爾曹但常以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 不患不到聖賢地位也]”

  남을 탓하는 것은 제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쉽게 남을 탓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 발짝 물러나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면 과연 어떨까요? 사람은 누구라도 육안으로 자신의 모습을 한눈에 다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 눈앞의 다른 사람을 바라보듯이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추어 본다면 자신의 모습을 한눈에 다 볼 수도 있죠. 거울 없이 자기 머리를 매만지고 옷매무새를 다듬기는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거울을 통해 본다면 누구라도 쉽게 헝클어진 머리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잡을 수 있죠. 이렇듯 자신이 남을 보는 시각으로 나 자신까지 바라봄으로써 스스로의 잘못을 직관하고 고쳐나간다면 ‘책기’라는 덕목을 보다 쉽게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임금들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면 수라상에 올라가는 반찬의 가짓수를 줄여가며 스스로 근신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겉으로 반찬 몇 가지를 덜 먹는 행위에만 그친 게 아닙니다.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임에도 임금은 그것이 자신이 부덕(不德)해서 발생한 소치로 돌리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근심하고 반성한 것이죠. 이는 곧 옛날 임금들이 ‘책기’를 실천한 자세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 앞에서도 옛날 임금들은 스스로 잘못이 없나 돌아보곤 했는데, 요즈음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가 닥쳤음에도 옛날과 뚜렷이 대비되는 모습들만 나타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책기’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지만, 또한 가장 기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노사 선생과 범 충선공이 남긴 교훈을 위정자(爲政者)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아주기를 막연하게나마 기대해봅니다.

 

글쓴이 : 허윤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Posted by 聖枝 성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