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망매가(祭亡妹歌)



아끼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분들의 슬픔을 위로하며..,



 제망매가(祭亡妹歌)

                                               월명사(月明師)

 삶과 죽음의 길은

 生死路隱,

 여기 있으니 두려워하고 

 此矣有阿米次兮伊遣,

 '나는 갑니다.'라는 말도 못다 이르고

 吾隱去內如辭叱都,

 어찌 갑니까?

 毛如云遣去內尼叱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於內秋察早隱風未,

 이리 저리 떨어지는 잎처럼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같은 나무 가지에 나고서도

 一等隱枝良出古,

 가는 길을 모르오니

 去奴隱處毛冬乎丁,

 아아, 극락에서 다시 만날 날을

 阿也彌陀刹良逢乎吾,

 도 닦으며 기다리겠습니다.

 道修良待是古如。





 제망매가(祭亡妹歌) 소개


신라 제 35대 경덕왕 때의 승려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10구체 향가이다.《위망매영재가(爲亡妹營齋歌)》라고도 한다. 월명사가 죽은 여동생을 위하여 이 노래를 지어 제사를 지내니 갑자기 광풍이 지전(紙錢)을 날리어 서쪽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형제를 한 가지에 난 나뭇잎에 비유하고, 누이 동생의 죽음을 나뭇잎이 가을철에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누이를 그리워하며 미타찰(彌陀刹), 곧 극락에서 만날 날을 도를 닦아 기다리겠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이 향가가 지어지던 당시에 이런 시가(詩歌)가 이따금 천지신명을 감동시키는 일이 많다고 신성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찰(鄕札)로 표기된 원문은 위의《삼국 유사(三國遺事)》5권에 실려 전한다.






월명사

전설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742-765) 때 경주 사천왕사에 속해 있던 승려인데 피리를 잘 불었다고 전한다. 달 밝은 밤에 문 앞 큰 길에서 피리를 불자 달이 가던 길을 멈췄다. 그래서 그 마을의 이름을 월명리라 하였고, 이름도 월명이라 불렀다. 향가를 잘 지었으며, 제망매가 외에 4구체의 도솔가'를 남겼다.



배경 설화

경덕왕 19년 경자 4월 초하루 날 해가 둘이나 떠서 10 여일 동안 하나가 사라지지 않았다.(국가 구데타, 즉 정변이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일관(日官)이 왕께 아뢰기를..,

 
인연 있는 스님을 청하여 산화 공덕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원전에 단을 깨끗이 모시고 청양루(靑陽樓)에 행차하여 인연이 있는 스님을 기다렸다. 그때 마침 월명사가 천백사의 남쪽 길로 지나가므로 왕이 사람을 시켜 불러들여 단을 열고 계청을 지으라 명했다.


월명사는 저는 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하여 오직 향가만 알고 성범(聲梵)에는 서투릅니다."하였다.

왕은
이미 인연 있는 중으로 뽑혔으니 향가를 지어도 좋다."고 하명하였다.


월명이 명을 받들어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바쳤.



도솔가(兜率歌)

 오늘 여기 산화가(散花歌)를 부르노라 뿌린 꽃 너는

 日此矣散花唱良巴寶白乎隱花良汝隱

 곧은 마음의 명령을 부림이니,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미륵좌주(彌勒座主)를 모시게 하라. 彌勒座主陪立羅良

 가사는 이러하다.

 其詞曰

 용루에서 오늘 산화가(散花歌)를 불러

 龍樓此日散花歌,

 청운(靑雲)에 한 송이 꽃을 뿌려 보내네.

 桃送靑雲一片花。

 깊고 정중한 곧은 마음이 시키는 것이니

 殷重直心之所使,

 멀리 도솔대선(兜率大僊)을 맞으라.

 遠邀兜率大僊家。

 지금 민간에서는 이것은 산화가(散花歌)라고 하지만

 今俗謂此爲散花歌,

 잘못이다. 誤矣。

 마땅히 도솔가(兜率歌)라고 해야 할 것이다.

 宜云兜率歌。

 산화가(散花歌)는 따로 있는데

 別有散花歌,

 그 글이 많아서 실을 수 없다.

 文多不載

 그런 후에 이내 해의 변괴가 사라졌다. 旣而日怪卽滅。



이윽고 해의 변괴가 사라지자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차 달이는 기구 한 벌과 수정 염주 108개를 하사했다. 홀연 모습이 곱고 깨끗한 동자 하나가 나타났는데 공손하게 다기와 염주를 받들고 대궐 서쪽 작은 문으로 나갔다. 월명사는 궁중의 심부름하는 아이로 알고 왕은 대사의 시중을 드는 아이로 알았다.


왕은 몹시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쫓게 하였는데, 동자는 내원의 탑 속으로 숨고 다기와 염주는 남쪽 벽화 미륵상(彌勒像) 앞에 놓여 있었다월명 대사의 지극한 덕과 정성이 이와 같이 미륵보살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이.



조정이나 민간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왕은 더욱 공경하여 다시 비단 백 필을 주어 큰 정성을 표했다.

월명은 또 일찍이 죽은 누이를 위하여 재를 올리며 향가를 지어 추모했는데 이 때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더니 지전(紙錢)을 서쪽으로 날려 보내 사라지게 했다.('도솔가' 참조)


월명이 항상 사천왕사에 있으면서 피리를 잘 불었다. 어느 날 달밤에 피리를 불면서 문 앞 큰길을 지나가니 달이 그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고 멈추었다. 이 때문에 그곳을 월명리(月明里)라 했다. 월명사(月明師)도 또한 이 일 때문에 명성이 높아졌다.


월명사는 능준대사(能俊大師)의 제자인데 신라 사람들도 향가를 숭상한 자가 많았으니 이것은 대개 시(詩), 송(頌)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주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삼국유사 권5 감통 월명사 도솔가>



공덕을 칭송하여(讚曰)

 바람은 지전을 날려 죽은 누이동생의 노자 삼게 하고

 風送飛錢資逝妹

 피리는 밝은 달을 흔들어 항아[각주:1]가 그 자리에 머물게 했네

 笛搖明月住姮娥

 도솔천(兜率天)이 하늘에 이어져있어 멀다 말하지 말라,

 莫言兜率連天遠

 만덕화(萬德花그 한 곡조로 즐겨 맞았다네.

 萬德花迎一曲歌



  1. 항아(姮娥):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고대의 제왕이자 신인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의 딸이자 그 미모에 견줄 자 없다는 여신이다. 도교전설에 월궁(月宮)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숭배하여, 중추절에는 항아에게 제를 올린다. 중국에서는 상아(嫦娥)라고 부른다.

    중국 발음으로는 창어(Cháng'é)인데 중화인민공화국의 달 탐사위성인 창어 1, 2, 3호가 여기에서 따온 것. 도교에서는 태음성군(太陰星君), 월궁황하소요원정성후태음원군(月宮黄華素曜元精聖後太陰元君), 월궁태음황군효도명왕(月宮太陰皇君孝道明王)이라 높여 부르고, 달의 궁전에서 지낸다 하여 월궁항아(月宮姮娥)라고도 부른다.

    《포박자》에 따르면 항아는 고대의 궁신(弓神)인 예(羿)의 아내이자 선녀였지만 남편 예가 천제(天帝)의 아들인 열 마리 태양의 정(精) 중 아홉을 쏘아죽인 죄로 인해 남편과 함께 지상으로 쫓겨나 신에서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예는 부인 항아를 위해 곤륜산의 서왕모에게서 불사의 약을 받아왔는데, 서왕모가 말하기를 이 약은 둘이 반씩 나누어 마시면 불로장생하고 혼자 모두 마시면 다시 신선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항아는 예가 없는 틈을 타 불사의 약을 혼자 마시고 홀로 하늘로 올랐지만 감히 천계로 돌아갈 수 없어 달에 있는 광한궁(廣寒宮)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나 달에 이르른 항아는 이미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잃고 두꺼비가 되어버렸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지상에 남겨진 예는 자기 때문에 함께 신의 직위를 박탈당한 아내의 처지를 이해했기에 홀로 떠나간 항아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죽기 전까지 밤마다 그녀를 위해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항아는 정말 애처가에 대인배인 남편을 두었다고 해도 괜찮을텐데 항아는 이런 남편을 차버린 셈. 그리고 그 벌로 두꺼비가 되고 말았다

    한편 전한 시대에 저술된 《회남자》에서는 단순히 항아가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쳐 달의 정령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두꺼비로 변하는 내용이 추가되는 것은 동한 이후의 기술로 여겨진다.

    雲母屛風燭影深  운모 병풍 앞 촛불 그림자 깊어만 가고
    長河漸落曉星沈  은하수 너머 새벽별 기울어 갈 때
    嫦娥應悔偸靈藥  항아는 영약 훔친 일 후회하고 있으리.
    碧海靑天夜夜心  푸른 하늘 밤마다 홀로 지새는 마음
    -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상아》 (唐代詩人李商隱的《嫦娥》)

    후일에 이 신화는 변용을 거치게 되는데, 또 다른 항아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항아는 불사의 약을 훔쳐 달로 도망쳤지만 남편을 배신한 죄에 대한 벌로서 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달에는 불사의 약을 찧는 토끼 한 마리와 계수나무 한 그루가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땅에서 영원히 달에서 지내게 된 처지가 되어서야 항아는 비로소 남편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으니 외롭게 달에서 토끼와 함께 떡방아를 찧으며 유배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D%95%AD%EC%95%8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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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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