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백일흔두 번째 이야기
2015년 9월 24일 (목)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말을 삼가기를 옥을 손에 쥐듯, 가득 찬 물 그릇을 들듯이 조심하라. 

樞機是愼 執玉捧盈 
추기시신 집옥봉영

이첨(李詹 1345~1405)의 「눌헌명(訥軒銘)」, 
 『동문선(東文選)』권40에 실려 있다.



  윗글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문신인 이첨이 지은 「눌헌명」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왕 1년(1375) 간관이었던 이첨은 당시 권신이었던 이인임(李仁任) 등을 탄핵하다가 하동(河東)에 유배되었다. 유배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설에 오를까 염려한 이첨은 유배지의 한구석에 집을 지어 ‘눌헌(訥軒)’*이라 이름 짓고는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명(銘)’**을 지었다.


  “질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病從口入, 禍從口出]”는 옛말도 있듯 사람의 처세(處世)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그리고 말해야 할 것과 침묵해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가 구설과 곤경에 처했던 역대의 ‘설화(舌禍)’는 굳이 군더더기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반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허물을 바로잡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는 올곧고 강직한 말은 윗사람의 노여움을 사기 쉬운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윗사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침묵해야 할까. 아니면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학이 날 적에는 날개가 검고 서 있으면 꼬리가 검다”고 대답한 옥당(玉堂)***의 늙은 서리처럼 이도 옳고 저도 옳다고 해야 할까. 옥당 서리의 대답은 보신(保身)의 대책으로서는 흠잡을 데 없지만, 군자의 처신으로서는 부족한 것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벙어리일 뿐이며 양편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첨에 가깝기 때문이다.

  당시 이첨은 조정의 전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던 권신을 주살하기를 청했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 머나먼 남쪽 변방 해안가에서 10년이나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자신의 집을 ‘눌헌’이라 이름 짓고 말하기의 신중함을 강조하는 ‘명’을 지은 것으로 보아 언뜻 젊은 혈기에 집권자에 맞섰던 자신의 경솔한 언행을 후회하고 자숙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공자께서도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준엄하게 하되 말은 낮춰서 해야 한다.[邦無道, 危行言孫]”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첨이 「눌헌명의 뒤에 쓰다[題軒銘後]」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이 명을 지은 것은 평소의 생각을 밝힌 것이기도 하지만 뜻이 좌절되고 기가 꺾인 자신을 “조금이나마 격려하고 분발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위의 말은 공자의 “말은 낮추어서 해야 한다”는 뜻을 부연한 것이다. 즉 혼란한 세상에서도 해야 할 말은 하되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 눌헌(訥軒) : 말수가 적고 어눌한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뜻.
** 명(銘) : 한문 문체의 일종으로 주변의 기물, 거처 등에 경계의 글을 쓰거나 새긴 것.
***옥당(玉堂) : 홍문관의 별칭

 

글쓴이 : 박재영(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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