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백아흔여섯 번째 이야기
2015년 10월 12일 (월)
빌려 쓰고 가는 삶

[번역문]

  나는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탄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놈을 얻었을 때에는 아무리 급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까봐 겁이 나서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하고, 개천이나 도랑을 만나면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평지인 양 내달리는데, 그러면 속이 아주 후련해진다. 그렇지만 간혹 위험에 빠지거나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잠깐 빌려서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정말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임금은 백성에게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영예를 누리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길 뿐 끝내 살피려고 하지 않으니,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 생기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 미천한 자의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맹자(孟子)가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으니,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이에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지어 그 뜻을 부연한다. 
 
[원문]

余家貧無馬, 或借而乘之. 得駑且瘦者, 事雖急, 不敢加策, 兢兢然若將蹶躓, 値溝塹則下, 故鮮有悔. 得蹄高耳銳駿且駛者, 陽陽然肆志, 着鞭縱靶, 平視陵谷, 甚可快也, 然或未免危墜之患. 噫! 人情之移易, 一至此邪? 借物以備一朝之用, 尙猶如此, 况其眞有者乎? 然人之所有, 孰爲不借者? 君借力於民以尊富, 臣借勢於君以寵貴. 子之於父、婦之於夫、婢僕之於主, 其所借亦深且多, 率以爲己有, 而終莫之省, 豈非惑也? 苟或須臾之頃, 還其所借, 則萬邦之君爲獨夫, 百乘之家爲孤臣, 况微者邪? 孟子曰: “久假而不歸, 烏知其非有也?” 余於此有感焉, 作「借馬說」, 以廣其意云. 
 
이곡(李穀, 1298~1351), 『가정집(稼亭集)』 제7권「차마설(借馬說)」




  
  
과거 시대에 말[馬]의 기능은 이외로 다양했다. 사람이나 물건을 수송하는 이동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물론이거니와 통신과 전투에서도 그 역할이 매우 컸다. 더 나아가 수레와 함께 말은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다. 요즘은 말과 수레에서 차량으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옛날에 말과 수레가 수행했던 이런 여러 기능과 역할을 차가 대신하고 있다.

  한(漢)나라 문제(文帝)는 그 아들 경제(景帝)와 더불어 ‘문경지치(文景之治)’로 일컬어질 만큼 치적이 훌륭한 임금이다. 한 문제 원년에 천리마를 바친 자가 있었다. 그러자 문제는,
  “황제가 출행할 때, 앞에서는 의장용 수레가 선도하고 뒤에서는 후속 수레가 호위한다. 평소에 출행할 때는 하루에 50리를 이동하고 군대를 거느리고 출행할 때에는 겨우 30리를 이동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짐 혼자서 천리마를 타고 어딜 가겠는가?” 하고는 말을 되돌려 주고 오가는 비용까지 보태 주었다.

  그랬던 한 문제가 바로 그 이듬해에는 패릉(霸陵) 언덕 위에서 서쪽으로 수레를 내달려 험준한 비탈길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랬다가 그만 직간(直諫)을 잘하기로 유명한 원앙(袁盎)의 만류로 생각을 접고 만다. 원앙의 말은 이랬다.

  “지금 폐하께서 여섯 마리의 비마(飛馬)가 끄는 수레를 내달려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말이 놀라 수레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설령 폐하께서야 자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으시더라도 지하에서 무슨 낯으로 고조와 태후를 뵈시렵니까?”

  빌려 쓰는 말과 수레를 마음 내키는 대로 몰다가 국가와 조상에 죄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일침이었다.

  훌륭한 임금으로 칭송받는 문제도 한 해 전에 했던 말을 망각하고 이랬던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준마가 끄는 수레나 비싸고 성능 좋은 차가 있으면 한번 뽐내며 달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지 않던가?

  한 문제가 다른 임금과 다른 점이라면 신하의 충언을 듣고는 자기의 뜻을 굽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문제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던 원앙은 결국 문제의 눈 밖에 나 지방으로 좌천되고 만다. “임금 노릇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하기도 어렵다.”는 공자의 말씀은 이래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이맘때면 국정감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주어진 권한은 남에게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하다는 가정(稼亭)의 말을 곱씹게 되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크게 보면, 어차피 우리의 삶도 잠시 빌려 쓰고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국감을 지켜보면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빌어 그 뜻을 부연해 보았다.


  

  
김낙철글쓴이 : 김낙철
  •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 주요 번역서
    - 인조/ 영조/ 고종대 『승정원일기』 
    - 정조대 『일성록』 
    - 『명재유고』, 『서계집』, 『성호집』 등의 번역에 참여


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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