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백마흔네 번째 이야기
2014년 8월 28일 (목)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뒤에 외적이 와서 치고,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해친 뒤에 사기가 와서 해친다. 

國必自伐 而後外寇伐之 人必自戕 而後客邪戕之
국필자벌 이후외구벌지 인필자장 이후객사장지

이정귀(李廷龜, 1564~1635)
 「학질을 쫓아 보내는 글[送瘧文]」
 『월사선생집(月沙先生集)』 권33

 





  
  우리말에 “학을 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 시달려 진이 빠지고 질리게 된 상황을 겪었을 때 하는 말입니다. 학은 학질인데 한 번 걸리면 증상이 워낙 괴롭기도 하거니와 지독히도 떨어지지 않는 몹쓸 병이기에 이 말이 생긴 것입니다.

  월사(月沙) 이정귀가 이 병에 걸린 지 3년째가 되었습니다. 증상은, 한여름에 두터운 겨울 갖옷을 입고도 화로를 끼고 살고, 추운 날 얼음물을 마시고도 갈증을 호소하며, 등에는 일하지 않아도 땀이 흐르고 다리는 움직이지 않아도 떨린다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잘 나가던 벼슬살이도 접은 터라, 마침내 학귀(瘧鬼 학질귀신)를 불러 전별의 잔을 건네며 사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혼백이 달아나 마치 미치광이나 바보와 같고 마음이 두렵고 어수선하여 날로 기운이 쇠진해지도록 만든 것은 모두 그대의 짓이라오.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토록 괴롭게 학대하며, 무슨 미련이 있기에 이토록 오래 머물고 있단 말이오. 부디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번개와 바람을 타고 훌쩍 날아가 주시오.”

  그러자 학귀가 등장하여 응답하는데, 윗글은 그가 답한 내용의 서두입니다.

“대저 나무가 썩으면 날짐승이 모여들고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자기를 친 뒤에 외부의 적이 와서 치고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자신을 해친 뒤에 외부의 사기(邪氣)가 와서 해치는 법이라오.”

  하고, 그(학질)가 들어온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으니, 평소 음식과 거동을 함부로 한 것, 근심과 사념(思念)으로 기력을 해친 것, 초상을 치르느라 극도로 몸을 훼손한 것 등등. 그리고 명리(名利)의 굴레를 쓰고 벼슬에 연연한 것을 특히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학질을 앓고 있는 것은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7년간 이어진 전란의 와중에서 온 나라가 온전할 리가 없었습니다. 학질 귀신도 나라와 개인의 병통을 하나로 보고 다음과 같이 논하였습니다.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고 기운이 소진되면 몸이 죽는 법이라오. 적이 나라 밖에 있는데 부강(富强)을 이루고자 부역과 세금을 가중하여 백성의 생산을 긁어모으면 민심이 이반하여 나라 안이 먼저 궤멸하게 되며, 병이 몸 바깥쪽에 있는데 속히 낫고 싶어서 독한 약을 투여하여 기혈(氣血)을 마구 치고 흔들어 놓으면 원기가 나른하여 절로 사멸하게 된다오.”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도,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이 업신여기고,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망친 뒤에 남이 망치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하는 것이다.[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毀 而後人毀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

라고 하였으니, 결국은 나라나 개인의 패망이 모두 자초(自招)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중히 여기고 아끼지 않으면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몸은 병에 걸립니다. 집안이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홀대하여 지키고 보존하는 데에 우선 힘쓰지 않는다면 갖가지 재난은 물론 외적의 침입까지 받게 됩니다.

  학질은 이미 사라진 병이지만, 자중자애(自重自愛)하라는 옛 선비의 경계는 오늘날 더욱 간곡하게 다가옵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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