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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鏡虛, 1849년 ~ 1912년)스님은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이다. 1849년 전주 자동리에서 아버지 송두옥(宋斗玉)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속명은 동욱(東旭)이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먼저 출가하여 공주 마곡사에서 득도한 형은 태허 성원(泰虛性圓) 스님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와서 경기도 청계산 청계사에서 글을 모르던 계허 스님에게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14세 때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적에 여가로 글을 배우는데, 눈에 거치면 외우고, 듣는 대로 뜻을 해석할 만큼 문리(文理)에 해박했다. 그해 가을 탈속한 계허스님의 천거해서 계룡산 동학사(고종 원년, 1864년에 만화화상이 개창함)로 찾아가 만화 화상(萬化和尙)에게 수학하여 전법이 이루어졌다.
고종 8년(1871) 경허, 성우스님 23세 때 동학사에서 개강(開講) 했는데 많은 대중이 몰려왔다. 어느 날, 계허 스님을 뵈러 가던 길에 폭우를 만나 비를 피하던 중 역병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장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 삶이 참으로 무상(無常)하니 모든 것이 환영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경허 스님은 학인을 지도하고 부처님의 교리를 모두 다 안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사의 언덕에 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로 깨달음이란 실제 참여하는 깨달음(實參實悟)에 이르러야 비로서 부처님의 지혜에 이를 수 있는 것이라 느끼고 그 길로 동학사로 돌아와 학인들을 흩어 보내고 강학을 폐하였다.
경허스님에게 시중드는 사미승 원규가 있었다. 원규의 은사 도일은 경허스님과 학제였다. 어느 날 도일이 계룡산 기슭에 위치하는 원규의 속가에 찾아 가서 그의 부친과 다담(茶談)을 나누었다. 선법에 일가견이 있던 원규의 부친 이처사(진사)가 “중이 된 자는 끝내 소가 됩니다.(爲僧者 畢竟爲牛)”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도일이 미처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처사가 “어째서 소가 되더라도 고삐를 뚫을 곳이 없는 소가 되겠다(爲牛則 爲無穿孔處)는 대답을 못하십니까?”라고 말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서 “백천법문의 헤아릴 수 없는 오묘한 뜻이 바로 얼음이 풀리고 기와가 해체되듯 하였다(百千法門 無量妙義 當下氷消瓦解)”는 말이 전해온다. 법명이 '성우(惺牛)'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1879년에는 이 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드날렸다.
1880년 속가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친형 태허스님이 주지로 있던 연암산 천장암으로 거쳐를 옮긴다. 천장암에서 모든 공안이 알음알이로 해결되어 버렸지만.., 영운(靈雲)선사의 '나귀 일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도래한다.(驢事未去 馬事到來)'는 법문은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어 이것을 화두로 삼고 두문불출하였다.
수마(睡魔)를 물리치며 용맹 정진하기 석 달, 화두 한 생각만 또렷해져 있었던 어느 날, 우연히 바깥에서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이 들려오는 순간, 여지없이 화두가 타파 되었다. 이때 31세였다. 오도송(悟道頌)은..,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 홀연히 어떤 이의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말소리를 듣고서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 문득 깨달아 보니 삼천 세계가 모두 나의 집일세
六月燕岩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 유월 연암산 아래 길에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 들녘에 있는 사람 일이 없어 태평가를 부르네.
이후, 참으로 전법할 사람이 없음을 탄식하셨다. 그러던 중 1885년 경허선사 세수 37세 때, 수행자를 얻었는데 바로 혜월 혜명(1862~1937)스님이다. 이렇게 천장암에서 경허의 '삼월(三月)'로 불리는 수월, 혜월, 만공, 세분스님이 출가해 와서 차례로 전법이 이루어졌다.
제자들과 함께 천장암에서 지내다가 개심사 부석사 간월암 등지를 다녀오기도 하였는데 이 때 경허스님과 제자들 간의 많은 일화가 전한다.
경허 선사의 수제자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1861년 ~ 1937년), 수월(水月, 1855년 ~ 1928년)·만공(滿空, 1871년 ~ 1946년)에 대해 선사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삼월인 제자들도 모두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이 스님들 역시 근현대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사들이다.
경허스님은 청허 휴정(淸虛休靜) 선사의 12세손(孫)이며, 환성 지안(喚惺志安) 선사의 8세손이다. 이때부터 여러 곳에 선풍을 진작시키니 각처에 선원(禪院)이 개설되고 걸출한 선객과 수행자들이 많이 모여들어 적막하기만 하던 조선의 선 불교가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1886년 6년 동안의 보임(保任)을 마치고 옷과 탈 바가지, 주장자 등을 모두 불태운 뒤 무애행(無碍行)에 나섰다. 한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돌연 환속하여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하고,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1905년 57세에 세상을 피하고 이름을 숨기고자 갑산(甲山)ㆍ강계(江界) 등지에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호를 난주(蘭州)라 하여, 머리를 기르고 유관(儒冠)을 쓰고, 바라문의 몸을 나타내어 만행(萬行)의 길을 닦아 진흙에 뛰어들고 물에 뛰어들면서 인연 따라 교화하였다.
1912년 4월 25일 새벽에, 함경도 갑산(甲山)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임종게를 남긴 뒤 입적하니, 세수(世壽) 64세, 법랍(法臘) 56세이다. 마지막으로 일원상(一圓相)을 그린 위에 써 놓은 열반게송(涅槃偈頌)이 있다.
경허스님의 임종게(臨終偈) 心月孤圓(심월고원) ... 마음 달이 홀로 둥그니 光呑萬像(광탄만상) ... 그 빛이 만 가지 형상을 삼켰도다. 光境俱忘(광경구망) ...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復是何物(부시하물) ... 다시 어떠한 물건이 있으리오. |
여름에 천화(遷化) 소식을 듣고 제자 만공(滿空) 스님과 혜월(慧月) 스님이 열반지 갑산에 가서 법구(法軀)를 모셔다 난덕산(難德山)에서 다비(茶毘: 화장)하여 모셨다. 저서《경허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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