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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내적 여행 본문
도(道)에 입문한 사람이 지켜야 할 필수 조건은 아래 3가지 입니다. 이 3가지가 모두 완성되면 영적 진보는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현생의 삶에 충실했다고 하더라도 전생의 카르마, 상스카라가 많다면 어쩔 수 없이 늦어지겠지요?
도인을 판가름할 때 아래 3가지가 충실한지 살펴 보면 알 수 있기에 이 3가지 조항은 도인(道人)의 진실성을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1. 성찰(省察)과 회개(悔改) ~ 신께 바치는 제사(祭祀)
2. 자비 이타적인 삶 ~ 보시(布施, 普施 : 공덕 에너지)
3. 기법 완성 ~ 고행(苦行) [바가바드 기타 17, 7]
대부분의 종교의 전통들은 그에 내포된 커다란 위험들 때문에 보다 깊은 마음의 동굴 속에서 제멋대로 방황하기를 허락하지 않고 신비스런 고요에 몰두하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선(禪)의 수행자라면 선사(禪師)가 때를 판단하여 수련자에게 호흡을 세는 것을 멈추고 깊은 무상의 고요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 한다거나 그 에게 도움이 되는 ‘공안(公案)’을 줄 것이다.
대부분의 동양의 체계에서 이러한 지시에 대하여 중시한 것보다는 덜하지만 서양의 그리스도교도 이러한 지시를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지시는 의식할 수 있는 잠재 된 깊이에 이르기까지 명상 해 들어갈 적당한 때를 식별하게 하는 어떤 표지들을 파악해 내는 것으로써 보충 되기도 하였다.
이런 표지는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에게 발생되는 성령의 활동을 판단하는 방법이었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전통에서 관상기도(觀想祈禱 meditation)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이는 성서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1 4,19]"라는 성령의 초대를 예감하지 않고서 서둘러서 내적 방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사랑이 찾아들기까지 제발 방해하지 말아다오. 흔들어 깨우지 말아다오.[아가 2,7]”라는 성구가 의미하듯이 성령 만이 관상적인 사랑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구절이며 자신이 신비가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을 경고하는 데 항상 사용되었다. 전통적 표징(signs)은 아래의 네 단계로 분류했다.
첫째 표지는 하느님과의 합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아 성찰과 회개’의 과정을 거치고 전적으로 선(善)에 만 자신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종교적인 전통들은 악마들이 주도하는 사악한 신비 주의에 대해서 조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종교적 전통에서 관상(觀想)의 길에 들어서기 전에 ‘성찰과 회개와 자비이타행’을 요구하는 것은 그러한 사악한 악마에게 조종 당하는 극악무도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신비한 선물을 받는 사람은 그것을 파괴적인 목적에 사용되게 하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전통적 표지는 ‘독거(獨居)에 대한 갈망과 홀로 되고자 하는 열망’이다. 당신의 갈망과 지향을 공감하지 못한 타인들이 당신에게는 단지 방해가 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홀로 있기를 참으로 간절히 흠모할 것이다.
책을 읽거나 듣기를 원하는 당신의 갈망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유일한 갈망은 ‘그것’에 대해 수행 중에 깨닫는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라고《내밀한 권고에 관한 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관상의 충동으로서 같은 저자가 ‘맹목적인 사랑의 자극’이라고 부르는 성령의 활동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수련자의 갈망이 절대자에 대한 이러한 갈망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해악적인 정서’라고 표현한 정서 불안, 신경 장애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표지는 묵상 할 때 ‘추리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혹은 적어도 그렇게 하는 것에 싫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영적인 모험을 시작하였을 때에는 아마도 성서나 여러 경전을 묵상하고 시편이나 기도(만트라 낭송)하며 대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말하자면 사고를 방해하는 보다 깊은 것을 파악하였고 전처럼 경건한 묵상을 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만족도 얻지 못한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의 의식의 발달에 있어서 첫째 단계인 이성적(理性的)인 단계를 지나 직관적인 단계로 나아 갈 준비가 갖추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즉, 좌측 뇌 반구의 역할이 끝나고 우측 뇌 반구의 더 나은 발전의 때가 도래한 것이다. 추리하는 것, 생각할 수 없을 때는 고요속에서 쉬게 된다. 그것은 사고와 이야기란 단지 그들의 사랑의 합일을 흐트려 놓을 뿐이기 때문에 고요하게 나란히 앉아 있기를 선호하는 흡사 사랑에 빠진 청춘 남녀의 경우와도 같다.
그것은 나태가 아니다. 말이 필요없고 생각도 필요없는 유대로 하느님과 결합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적 사랑의 불길과의 통교를 시작한 사람의 경우와도 같다.
넷째 표지는 ‘관상의 충동이 상존하는 것’이다. 의식되지 않는 깊이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내적 움직임이 삶을 인도하고 다스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표지는 ‘열렬한 사랑의 불길’, ‘어둔 밤’, ‘맹목적인 사랑의 자극’, ‘선명히 드러나는 의지의 지향’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었다.
《내밀한 권고에 관한 책》에서 말해지는 모든 것이 ‘그 표징에 관한 것’이지 ‘그런 표징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잘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랑의 내적인 움직임인 그러한 표지는 언제나 관상적인 것과 동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따금 그러한 표징 만 홀로 나타난다면, 관상적인 하느님의 부르심이 실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표지들은 참으로 풍부해서 밤에는 잠들고 아침에는 당신과 함께 일어나며 당신을 뒤따를 것이다. 그것은 하루 종일 당신이 행하는 모든 일을 통해 당신을 추종할 것이고 마치 장벽처럼 당신과 당신이 보통 일상적으로 행하는 기도 사이에 끼어들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과《무지의 구름》 2의 저자는 이러한 모든 표지(signs)들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한 가지만 나타나는 경우는 성령에 의한 관상적 부름의 증거가 못 된다는 것이다. 모두 함께 나타날 때 성령의 활동이 입증되고 정서 불안, 신경 질환의 전조가 되는 심리학적 증거가 아닌 것이다.
……… 중략(中略) ………
명상(瞑想)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지도자에게 마음을 열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스트레스나 유혹을 받을 때는 '항상 스승의 조언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예수회 창립자 성 이냐시오의 흥미로운 충고가 있다.
“원수(마구니, 사탄)는 자신을 감추고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거짓 된 연인처럼 행동한다. 이 기만적인 인간은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선한 사람의 딸이나 선한 남편의 아내에게 구애 하면서 그의 말과 생각이 비밀로 지켜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의 기만적인 말이나 불순한 의도를 딸이 그녀의 부친에게 알린다거나 아내가 남편에게 알린다면, 그의 계획이 실패할 것임을 그는 분명히 알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본성의 적은 그의 속임수와 기만으로 올바른 영혼을 유혹하면서 그 계책들이 통하고 비밀로 지켜지기를 갈망한다. 그 계책들이 그의 사악한 의도를 알고 있는 영적인 사람이나 고백자에게 드러날 때는 명백한 기만성이 밝혀져서 사악한 의도가 결코 승리를 거둘 수 없게 되기에 그는 크게 실망한다.”
위의 말은 오늘날의 조언과도 일치 되는 점이 있다. 위의 말은 성령을 분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결국 그리스도교의 명상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조언이란 명상의 전체 과정에 있어서 구체화(육체적인 실현)의 실현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어떠한 성령의 감화나 깨달음 또는 활동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따라서 육체적으로 실현되기까지는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성 바오로에게 있어서는 이 점이 얼마나 명백한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그가 얻은 위대한 깨달음은 아나니아에게 실현되기 까지는 완성되지 않았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손을 얹자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고, 그는 먹고 마시기 위해 앉았다. 이제 그의 깨달음이 완성된 것이다.[사도행전 9,18]
이제껏 나는 위험한 자신의 내적 여행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의 의도는 사람들을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을 놀라게 하거나 그 길이 위험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주목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성녀 예수의 데레사는 기록하고 있다.
“큰 보물을 얻을 목적이라면 도둑의 위험이 있는 길이라 할지라도 가야지,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얼마나 이상한 생각입니까!”
그 보물은 어떠한 수고나 위험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둑들이 노리고 있으니 지혜를 향한 여행 중에 그 도둑들을 간과한다는 것인 비현실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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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지의 구름》: 지은이는 C 월터스, 출판사: 바오로의 딸
'하느님과 영혼이 합일하는 공간 무지의 구름이라는 이름의 관상서.' 이 책은 영국교회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신심서 가운데 하나이다. 영국 신비주의가 한창 꽃피던 시절 14세기 당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큰 힘을 발휘해왔다.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처음 세장의 내용은 하느님께서 사랑 으로 당신의 어린 제자를 영적 생활의 높은 단계로 부르신다는 것이다. 이 에 응답하는 제자는 지극한 근면과 겸손으로 또 하느님을 간절히 열망하고 사랑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거기에는 영적 경계심과 과거에 대한 망 각, 헌신적인 의지 및 "무지의 구름"이라는 지적 어둠 속에서 하느님께 도달하려는 결단이 포함된다.
해설에 해당되는 본문에서 저자는 지성으로는 하느님께 도달할 수 없다 는 점, 그리고 생각과 기억을 "망각의 구름"아래 파묻어버려야 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다루고, 사랑은 하느님과 합일하는 통로인즉 이 같은 사랑에서 나오는 열매들 특히 겸손과 자애라는 덕목들을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 목차 -
서문
머리말
저자에 대하여
자료
신비의 길
이 책에 나오는 주요 개념들- 개요 / 은총 / 사랑을 열망하는 적나라한 의지 / 힘든 길 / 죄 / 관상
감사의 말씀
참고문헌
무지의 구름 - 여는 말 / 내용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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