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나는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탄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놈을 얻었을 때에는 아무리 급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까봐 겁이 나서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하고, 개천이나 도랑을 만나면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평지인 양 내달리는데, 그러면 속이 아주 후련해진다. 그렇지만 간혹 위험에 빠지거나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잠깐 빌려서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정말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임금은 백성에게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영예를 누리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길 뿐 끝내 살피려고 하지 않으니,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 생기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 미천한 자의 경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맹자(孟子)가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으니,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이에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지어 그 뜻을 부연한다. [원문]
余家貧無馬, 或借而乘之. 得駑且瘦者, 事雖急, 不敢加策, 兢兢然若將蹶躓, 値溝塹則下, 故鮮有悔. 得蹄高耳銳駿且駛者, 陽陽然肆志, 着鞭縱靶, 平視陵谷, 甚可快也, 然或未免危墜之患. 噫! 人情之移易, 一至此邪? 借物以備一朝之用, 尙猶如此, 况其眞有者乎? 然人之所有, 孰爲不借者? 君借力於民以尊富, 臣借勢於君以寵貴. 子之於父、婦之於夫、婢僕之於主, 其所借亦深且多, 率以爲己有, 而終莫之省, 豈非惑也? 苟或須臾之頃, 還其所借, 則萬邦之君爲獨夫, 百乘之家爲孤臣, 况微者邪? 孟子曰: “久假而不歸, 烏知其非有也?” 余於此有感焉, 作「借馬說」, 以廣其意云. - 이곡(李穀, 1298~1351), 『가정집(稼亭集)』 제7권「차마설(借馬說)」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