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효종(孝宗) 9년(1658년)에 그 분량만 해도 무려 1만여 자(字)에 달하는「국시소(國是疏)」라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선조(宣祖) 때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인 이른바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되어 죽은 호남(湖南)의 명유(名儒) 정개청(鄭介淸)에 대한 신원(伸冤)을 주장하는 것이었죠. 당시 기축옥사는 단순한 모반 사건의 처리를 넘어서서 서인(西人)들이 동인(東人)들을 탄압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었고, 그 와중에 수많은 무고한 선비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개청도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었죠. 한편 그의 사후 제자들이 끊임없이 벌인 신원 운동을 통해 광해군(光海君) 때에는 전라도 함평(咸平)에 그를 배향한 서원이 설립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서인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자 정개청의 서원은 끝내 철폐되고 말았죠. 그러자 당시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지내던 윤선도가 이「국시소」를 올려 정개청을 변호하고 서원 철폐의 부당함을 역설했지만, 역으로 집권 세력인 서인들로부터 탄핵당해 벼슬자리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국시소」의 분량은 워낙 방대하지만 그중에서도 주제를 꿰뚫는다고 할 수 있는 핵심 구절을 아래에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과거의 일이 옳은지 그른지는 알기가 쉽고, 현재의 일이 옳은지 그른지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과거의 일이 옳은지 그른지도 알지 못하고서야 현재의 일이 옳은지 그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어째서 그런가 하면 과거의 일은 자신들과 관련되어 있지 않고 그 실상도 이미 다 드러나 있지만, 현재의 일은 자신들과 관련되어 있고 그 실상도 채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옛사람들은 과거의 일이 훌륭한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를 반드시 분별하려고 했으니, 그 저의(底意)는 아마도 현재의 일이 훌륭한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를 반드시 분별하려는 데에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이 훌륭한지 아닌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이 서로 뒤바뀌어 버린다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旣往之是非, 知之易者也, 目前之是非, 知之難者也. 旣往之是非不能知, 則目前之是非何得知也? 何者? 旣往則吾固無所係吝, 而彼亦已至畢露也, 目前則吾固有所係吝, 而彼亦未至畢露也. 是以古人之所以必欲辨別旣往之賢邪是非者, 其意蓋在於必欲辨別目前之賢邪是非也. 賢邪莫辨, 是非顚倒, 則其何以爲國也?]
이처럼 윤선도는 과거 정개청의 일이 옳은지 그른지를 반드시 분별할 수 있어야 현재의 정치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분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이미 그 실상이 다 드러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쉬운 과거의 일조차 제대로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현실 정치에서 실상이 채 드러나 있지 않은 일의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겠죠. 즉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릴 수 있는 단초는 곧 ‘과거를 바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입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윤선도가 말하고자 한 핵심 역시 과거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현실 정치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요즘 보면 거꾸로 현실 정치의 명분이나 기준에 맞춰서 과거 역사를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비춥니다. 그런데 자기 얼굴이 왜 이리 못나게 보이냐며 그 거울 자체를 부정하고, 포토샵 된 이미지를 자기 실제 모습으로 내세워선 곤란하겠죠. 역사에 대한 분별 기준이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아닌, 상대적인 ‘이해관계’가 되어버린다면 언젠가 우리는 무엇이 옳은 역사인지도, 무엇이 그른 역사인지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최소한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올바른’ 역사인지 자랑스럽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런 조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