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후 가운데 가장 비운의 삶을 살았던 이를 찾는다면 단연 인현왕후(1667~1701)이다. 그는 열다섯에 왕비로 간택되어 궁궐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러 해가 되도록 왕자를 낳지 못했고 또 노론과 남인 사이의 당쟁에 휩쓸려 스물셋에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5년을 친정에서 보낸 후 궁궐로 다시 돌아오기는 하였으나 몇 년 후 병을 얻게 되고, 그 병으로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당시 의관이 진단한 그의 병명은 통풍(痛風)이다.
1700년 3월 26일 아침 내의원이 세 차례에 걸쳐 보고한 바에 의하면, 인현왕후가 며칠 전부터 양쪽 다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니 전날 밤엔 아주 심해졌는데, 오른쪽 다리의 통증이 특히 심하고, 환도혈(環跳穴), 즉 엉덩이 고관절 위 허리 쪽 척추 부근이 퉁퉁 부어올랐다. 그리고 한 달 보름 뒤인 5월 12일부터 그 자리에 고름이 생기기 시작하여 이듬해 8월 14일 숨을 거둘 때까지 이 증상은 계속되었다. 그 사이에 무릎 위로 통증이 옮겨 다니거나 다리에 냉기가 돌기도 하고 복부가 부어오르기도 하는 등 여러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의학정보에서 통풍을 찾아보았더니, 혈액 내에 요산(尿酸)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 결정이 관절의 연골, 힘줄, 주위 조직에 침착되는 질병이라고 한다. 환자의 90% 이상이 엄지발가락에 발생하며 그 외에 발등, 발목, 무릎관절에 나타난다.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주로 나타나며 젊은 사람보다는 4, 50대가 많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 통풍은 인현왕후에게 나타난 증상과는 차이가 있다. 우선 발병 부위가 서로 다르고 연령대나 성별에 있어서도 맞지 않는다. 척추전문의를 만나 인현왕후의 증상을 물었다. 그는 대뜸 통풍이 아니라 척추결핵(spinal tuberculosis)이라 했다. 통풍은 인현왕후처럼 고름이 생기지 않으며 허리 쪽에 발병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의학정보를 뒤졌다. 척추결핵은 결핵균이 혈액 내로 침투하면서 혈류를 타고 이동하다 척추에 정착하여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이다. 척추 자체나 주변 조직의 염증과 괴사로 인해 통증이 심해지고, 증상이 진행되면서 척수 신경 압박 때문에 다리가 저리거나 신경을 따라 통증이 뻗칠 수 있다. 악화되면 손상된 척추뼈 주위에 고름이 형성되고 그것이 주변 조직으로 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당대 최고의 의술을 지닌 내의원 의관들이 왕후의 질병을 잘못 진단한 것인가? 그건 아니다. 단지 과거에는 요산에 의한 통풍과 감염에 의한 척추결핵을 하나의 통풍증상으로 본 반면 현대의학에서는 전자만을 통풍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차이가 난 것이다. 인현왕후가 앓은 통풍은 현대의학의 척추결핵에 해당하며, 지금 쓰고 있는 통풍(gout)은 요산성관절염이라 불러야 의미가 정확해진다. 결론적으로 인현왕후는 척추결핵으로 사망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승정원일기』에는 1700년 3월 26일부터 이듬해 8월 14일까지 1년 5개월 동안 인현왕후의 병세와 치료에 관련된 500여 건의 내의원 보고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한 사람의 질병 기록으로 이만큼 상세한 자료가 또 있을까? 질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과거와 지금이 다르지만, 몸에서 일어나는 병증은 인현왕후 때나 300년 뒤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승정원일기』에는 인현왕후 뿐 아니라 조선시대 수많은 왕과 왕비의 진료기록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만약 의학계에서 『승정원일기』에 관심을 가지고 이 기록들을 활용한다면 새로운 연구 성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 글쓴이 : 최채기-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번역서-『승정원일기』(인조/영조/고종대) 번역에 참여
-『홍재전서』,『졸고천백』,『기언』,『명재유고』,『성호전집』번역에 참여 - 저서-『고전적정리입문』, 학민문화사, 2011
-『서울2천년사』(공저),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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