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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야 요가(Kriya Yoga) 수련소
라히리 마하사야의 조언 108조 본문
라히리 마하사야의 조언 108조(108 Pieces of Advice)
Kriya is Truth, and the rest is false.
크리야는 진리이고, 그 외에는 거짓(환영, 사실이 아님)이다.Practicing Kriya is the study of the Vedas. Kriya is jagya [performance of Vedic rituals]. All should perform this jagya.
크리야 수행은 베다의 연구이다. 크리야는 자갸(베다의식 실행)이다. 모든 사람은 이 자갸를 수행해야 한다.All Devatas, gods, practice these Kriyas. One who practices Kriya is a Devata.
모든 데바(천사), 신들이 이 크리야들을 수련한다. 크리야를 수련하는 사람은 데바이다.One should practice Pranayam very seriously and sincerely.
매우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프라나야마를 수행해야 한다.Kriya practice opens the Eye of Wisdom.
크리야 수련은 지혜의 눈을 뜨게 해준다.The Knowledge of Brahma, the ultimate Self, is attained by the practice of Pranayam.
브라흐마, 궁극적인 자아에 대한 지식은 프라나야마 수련에 의해 달성된다.Ignorance is removed automatically when Kriya practice is perfect.
크리야 수행이 완벽 할 때 무지는 자동으로 제거된다.By the practice of Pranayam, ignorance is dispelled and Knowledge of the Self reveals.
프라나야마의 수행에 의해 무지가 파괴되고 지식이 본성을 드러낸다.One who does not see Kutastha [the inner Self between the eyebrows] with the help of Guru's advice in this physical body is a blind person.
스승의 지도로 쿠타스타(Kutastha 눈썹 사이의 내면 자체)를 볼 수 없다면 이 육체는 장님이다.That which saves one from the mind [restless breath], or Manasa, is called Mantra; that which saves one from the attachment of body is called Tantra.
마음[불안한 호흡], 또는 마나사(Manasa)로부터 비축된 것을 만트라라고 말하고, 육체에 대한 지지로부터 비축된 것을 탄트라라고 말한다.The transcendence of inhaling and exhaling is called Kebala Kumbhaka.
들숨과 날숨의 초월은 케발라 쿰바카(Kabala Kumbhaka)라고 말한다.The practice of Khecharimudra brings victory over the senses.
케차리 무드라의 수련은 감각을 뛰어넘는 승리를 가져온다.When the tongue is raised, the senses are subdued.
혀가 올라갈 때 감각은 정복된다.If one attains the stabilized state in Khecharimudra, then he attains the state of samadhi.
수련자가 케차리 무드라(Khecharimudra) 의 수련을 완성하면 그는 사마디 상태를 획득한다.One whose Khechari is successful is fortunate.
케차리를 성공한다는 것은 행운이다.OM is radiant Light. When this Light is spread throughout the body, all is seen; then, there is no desire to speak and to look.
옴(OM)은 빛나는 빛이다. 이 빛이 몸 전체에 퍼질 때, 모두가 보이고 그리고 말하고 보는 욕망이 사라지게 된다.Air [Breath] is Lord.
공기[숨]는 주님이다.When one continues to refine brown sugar, finally it becomes white. Similarly, continued Kriya practice brings Pranayam to perfection.
갈색 설탕을 정제하는 일을 계속하면 결국 하얗게 된다.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크리야 수행은 완벽한 프라나야마를 가져온다.If one moves the breath [practices Pranayam] always, breath ceases and becomes tranquil, sthira.
항상 숨[프라나야마 수련]을 운행하면 숨은 중단되고 조용해지고 평정된다.The state of Sthirattva, Tranquility, is called Yoga.
스틸타트와(Sthirattva), 평정의 상태를 요가라고 말한다.Practice Kriya as long as possible sitting in one asana at least once a day.
가능한 한 적어도 하루에 1번은 앉아서 아사나를 행하고 크리야 수행을 하라.If one strikes the door with the reverse air then it will open. This is called reverse japam.
만일 사람이 역행하는 호흡으로 문을 친다면 열릴 것이다. 이 역행을 자팜(japam)이라 말한다.
[That is, tranquilizing Apana, the restless breath of the lower centers, and bringing up at the dorsal center and then if one strike (makes thokar) according to the advice, then the inner Door will open].
그것은 고요한 아파나, 하위 센터들의 불정한 숨, 그리고 척추 센터로 올린 다음 가르침에 따라 부딪치면(토가르 수행), 내면의 문이 열리게 된다.Having practiced Kriya, one should hold onto the After-effect-poise of Kriya.
크리야 수련은 수련자 에게 균형 여파를 계속 보유하게 한다.You will receive results according to your Kriya practice.
크리야 수행에 따른 결과를 받게 될 것이다.If you feel pain [during the Kriya practice] in the body, then understand that the practice is not going.
크리야 수련 동안 고통을 느끼는 경우에는 수련이 잘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The real work is to tune to meditation in Voidness [on the fifth element, ether] leaving three nerves: Ida, Pingala, Susumna and four elements: khiti. apa, teja, and marut, respectively, earth, water, fire, and air. IDA, Pingala, Susumna.
진실한 작업은 빈공간 (Voidness 다섯 원소, 에테르) 안에서 명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3 신경 이다, 핑갈라, 수슘나를 각성시킴으로: 4 원소 (khiti. apa, teja, marut), 각각의 흙, 물, 불, 공기를 명상으로 조화롭게 한다.When the mind is tranquil, it does not desire unnecessarily. At the state of beyond desire, one does not perform unnecessary works.
마음이 고요할 때는 불필요한 욕망을 지니지 않는다. 욕망을 넘어선 상태는, 불필요한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다.When one has attained the tranquil Breath, then, for him, the only work which remains is to hold onto the state of tranquility always.
평정 호흡을 획득했을 때, 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일은 항상 평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It is difficult to express the state when the breath becomes tranquil, Sthira.
숨이 평정, 스티라(Sthira)에 도달했을 때 그 상태를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When the breath is tranquil day and night, then, one realizes the real state of Rama Mantra.
숨이 하루 밤낮으로 평정 되면, 라마 만트라의 실제 상태를 실현한 것이다.When the breath is tranquil, it is the state of Kumbhaka. When one sees Oneself, it is called Brahmajnana, "the Knowledge of Brahma, the ultimate Self.
호흡이 평정될 때는 쿰바카(Kumbhaka)의 상태이다.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을 때, 그것은 브라흐마즈냐나(Brahmajnana), ‘브라흐마의 지혜, 궁극적인 자아’라고 부른다.There is no need to breathe in or out. It is a much happier state; tranquility is there; this is Brahma.
호흡하여 숨 쉴 필요는 없다. 그 상태는 매우 행복한 상태이고 평정은 거기, 브라흐마에 있다.One becomes Brahma when one becomes desireless.
사람은 욕망이 없어질 때 신(브라흐마)이 된다.
[Lahiri Mahasay's meditative life with Kriya was from 1861 to 1873. The following dates are found in his notebook:
라히리 마하사야의 크리야 명상의 삶은 1861~1873년까지이다. 다음은 그의 노트에서 발견되었다.May 13, 1873-Whatever one wants to do, he can do.
1873년 5월 13일 -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원하면, 그는 할 수 있다.June 29, 1873-I entered inside [the Spinal Cord] a little bit.
1873년 6월 29일 - 나는 내부[척추 코드]로 약간 조금 진입하였다.July 16, 1873-The senses disturb today. I must renounce all desires and dissolve myself.
1873년 7월 16일 - 감각이 방해하는 오늘. 나는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자신을 용해시켜야 한다.The senses are obstructions; Transcending them by the practice of Prayanam and Omkar Kriyas, today, I have to dissolve perfectly. This is the only work for me.
감각은 장애이다; 프라나야마(Prayanam)와 옴카르 크리야(Omkar Kriyas)의 수행으로 그들을 초월하여, 내가 완벽하게 용해되었다. 이것이 나를 위한 유일한 작업이다.It does not matter if life departs from the physical body. I must practice Kriya with all my heart.
삶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전심을 다해 크리야(Kriya)를 수행해야 한다.Kriya practice brings divine wealth, that is, Sthirattva, the state of Tranquility.
크리야 수련은 신성한 부를 가져온다. 그것은 스틸라트바(Sthirattva), 평정 상태이다.Aug 13, 1873 - Now, always remain in Kumbhak. This is the form of Mahadev, Lord Siva; the head was always heavy, the eyes were drawn above; this state does not break when inhaling is done; at that time, silence is very beneficial.
1873년 8월 13일. 이제는 항상 쿰바카(Kumbhak)안에 머문다. 이는 마하데브(Mahadev), 시바 주님의 형태이며, 머리는 항상 무거웠고, 눈은 위로 향하게 했는데 들숨이 완료될 때까지 이 상태를 깨뜨리지 않아야 한다. 이때 침묵은 매우 유용하다.One can see all the deities if one withdraws the restless mind and makes inward himself in the Kutastha.
불안한 마음을 철회하고 쿠타스타(Kutastha)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면 모든 신들을 볼 수 있다.I saw Radhaji [consort of Krisna] at the base of the inner Sound.
나는 내면의 소리 근원부에서 라하지(크리슈나의 배우자)를 보았다.The sun is Kali (Goddess Kali), I myself am Kali. Thinking about Kali I become Kali. Now I will be the father of Kali, Brahma, the ultimate Self.
태양은 칼리(여신 칼리), 나 자신이 칼리이다. 칼리에 대해 생각하여 내가 칼리가 되었다. 지금 내가 칼리의 아버지, 브라흐마, 궁극적인 자기이다.The sun is Kali [Goddess Kali], and I am what I am.
태양은 칼리[여신 칼리]이고, 나는 나이다.Aug 13, 1873 - Today, I became Mahapurusa, "the great man.
1873년 8월 13일 - 오늘, 나는 마하푸루사(Mahapurusa),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Aug 17, 1873 - I am Mahapurusa. In the sun I saw that I myself am Brahma, the ultimate Self.
1873년 8월 17일 - 나는 마하푸루사이다. 태양 안에서 내 자신이 브라흐마, 궁극적 자체임을 보았다.Aug 18, 1873 - The world is revealed from my form. I myself am the only Purusa, the Supreme Being.
1873년 8월 18일 - 세상은 나의 형태로부터 현현되었다. 나 자신이 유일한 푸루사, 하느님이다.Aug 18, 1873 - The world is revealed from my form. I myself am the only Purusa, the Self; there is nobody else.
1873년 8월 18일 - 세상은 나의 형태에서 현현되었다. 나 자신이 유일한 푸루사, 거기엔 아무도 없다.Aug 22, 1873 - I myself am Adi Purusa Bhagavan, the first Lord.
1873년 8월 22일. 나 자신은 아디 푸루사 바가반, 첫째 주님이다.Aug 23, 1873 - Whatever I say is Veda. Know it for certain.
1873년 8월 23일. 무엇이든 내가 말한 것은 베다이다. 그것을 확실히 알라.I saw four Vedas, Brahma, Visnu, and Maheswar (Lord Siva) inside the Yoni [between the eyebrows].
나는 요니[눈썹 사이] 내부에서 4베다, 브라흐마, 비쉬누, 마헤스바(Maheswar 시바 주님)를 보았다.I saw a blue color in the light; in the blue, I saw a white Spot (Bindu); and in the White Spot, I saw a man who manifested himself as a Hindu, English man, etc.
나는 빛 안에서 파란 빛을 보았다; 나는 하얀 점(빈두)를 보았다; 그리고 하얀 점 속에서 나는 힌두인, 영국사람 등등으로 나타 난 한 남자를 보았다.I saw thousands of Krisnas.
나는 수천의 크리슈나들을 보았다.I saw the greater Krisna.
나는 위대한 크리슈나를 보았다.Aug 24, 1873 - I myself am Lord Krishna.
1873년 8월 24일 - 나 자신이 주 크리슈나이다.Aug 25, 1873 - I myself am the Aksara Purusa, the eternal Being.
1873년 8월 25일 - 나 자신이 아카사라 푸루사(Aksara Purusa), 영원한 존재이다.
[It may be mentioned here that each rhythm of Consciousness of the seeker in the process of merging with he ultimate Self is a state of deity, or devata till he merges completely in Oneness with Brahma.]
[여기서 언급하는데 아마도 구도자 의식의 각각 리듬이 궁극적인 자아와 일치하는 과정 안에서 신성한 상태이거나 브라흐마와 합일에서 완전하게 결합될 때까지 신(devata)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Oct 3, 1873 - I am the sun, the Mahadev, the first cause.
1873년 10월 3일 - 나는 태양, 마헤데브(Mahadev), 첫째 원인이다.Nov 12, 1873 - I myself am Mahapurusa Purusottam, "the great Self, the Supreme Being.
1873년 11월 12일 - 나 자신은 마하푸루사 푸루소탐(Mahapurusa Purushottam) '위대한 자아, 최고의 존재'이다.Aug 15, 1874 - It is not possible to achieve Abhaya pada, "the state of fearlessness" without the help of Guru. One must hold onto Oneself at the house of Tranquility, without which, one cannot achieve the Abhaya pada, the eternal Realization of the ultimate Self.
1874년 8월 15일. 구루의 도움 없이 압하야 파다(Abhaya Pada), ‘두려움 없는 상태’의 성취는 불가능하다. 사람은 자신의 평정 상태를 고수해야만 하며 그것이 없다면 압하야 파다(Abhaya Pada), 궁극의 자아의 영원한 실현은 달성할 수 없다.My form is everywhere; there is nobody except me, and that form is in Void. There is no day and night there.
내 형태는 도처에 있다; 아무도 나에게 예외가 아니지만, 형상은 무(無)이다. 낮과 밤도 없다.If you take shelter in me with true faith, then, I have to come to you. How can I stay far away?
당신이 진실한 신뢰로 나를 보호자로 여긴다면 당신에게 간다. 어찌 멀리 머물 수 있을까?I remain present near one who practices Kriya.
나는 크리야를 수련하는 사람 가까이에 현존한다.If you write in reverse order and see it in the mirror, it looks straight. Similarly, if you make reverse the breath of the body, then you will see Swarupa, the form of your self.
만일 당신이 거꾸로 써서 거울에 비춰볼 경우에 그것은 바르게 보인다. 비슷하게 당신이 만일 신체의 호흡을 역행한다면 스와루파(Swarupa), 자기의 형태를 볼 것이다.Dualism is the root of all suffering.
이원성은 모든 고통의 근원이다.Restless is the manifestation, and Sthirattva, Tranquility, is Lord Siva.
쉼 없음은 현현이며, 스틸라트바(Sthirattva), 평온은 시바 주님이다.You yourself do not know what will render you good.
당신은 무엇이 자신을 좋게 할지 알지 못한다.If the strain is generated on the lips, throat, and teeth by the practice of Pranayam, then the knowledge is called Bhakti, or devotion.
만일 중압감이 프라나야마(Pranayam) 수행에 의해 입술, 목, 그리고 치아에 생성되는 경우, 그 지식은 박티, 또는 헌신이라 한다.Whatever one thinks at the time of death, accordingly one becomes that; likewise, if you become Satchidananda at the time of leaving the body, then, you become yourself, the ultimate Self.
사람은 임종 시 생각에 따라 그와 같이 된다: 만일 당신이 육체를 떠날 때 사치다난다가 되었을 경우는, 당신 자신이 궁극의 자아가 되어 그처럼 된다.Who is Kabir? He is the sun, and he is Brahma, me.
카비르는 누구인가? 그는 태양이다, 그는 브라흐마, 나 자신이다.
[These names are found from his notebook].
이 이름을 그의 노트에서 발견했다.In Satyayuga Lahiri Mahasay was born as Satyasukrita, in tretayuga he was Munindra; in dwaparayuga Karunamaya; and in kaliyuga he was Kabir. Later, he became Shyama Charan.
사티야 유가(Satyayuga)에서 라히리 마하사야는 사티야수크리타(Satyasukrita)로 태어났고, 트레타유가(tretayuga)에서 그는 무닌드라(Munindra)였다; 드와파라유가(dwaparayuga) 에서 카루나마야(Karunamaya), 그리고 칼리유가(kaliyuga)에서 그는 카비르였다. 후에, 그는 쉬야마 차란(Shyama Charan 라히리 마하사야)이 되었다.If one meditates always on the Lord, all his other works are taken care of by the Lord Himself.
만일 언제나 주님을 늘 묵상하면, 모든 작업은 주님 자신에 의해 처리된다.If people want to go away, let them go away; but you should remain firm in your practice. Then, at the end, you will go into the house of Sthirattva, Tranquility.
사람들이 떠나기 원할 경우 떠나게 해줘라. 그러나 당신은 수련을 견고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 다음, 마지막에, 당신은 스틸라트바(Sthirattva), 평온의 집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The movement is called the world.
운동은 세계라고 불려진다.Applying body, mind, and speech in action is called Ahingsa.[Non- violence]
몸, 마음, 그리고 행동에 음성을 적용하는 것은 아힘사(Ahingsa 비폭력)라고 한다.Animals are enchanted by music; if the man is not attracted by the sound of OM, then he is an ass.
동물은 음악에 넋을 잃고, 사람이 OM 소리에 매료되지 않는다면 그는 멍청이다.Beyond the five senses, there is mind, that is breath; beyond the mind there is buddhi, that is Bindu, or spot [in between the eyebrows]; beyond the Bindu, Brahma, the ultimate Self, is the Pure Void, and Formless.
오감을 넘어서 마음으로 호흡하면, 마음은 초월하여 붓다(buddhi), 빈두 또는 점[눈썹 사이]이고, 빈두, 브라흐마, 궁극의 자기는 순수 텅 비고, 형태가 없어진다.The woman is the destroyer of man. Do not look at her, at any cost.
여자는 남자의 파괴자이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녀를 보지 않아야 한다.
[The sun of the self, that is, sound, is referred to here as a man; and the Jyoti, light of the self, is referred to as a woman. In other words, do not be interested in the play of Jyoti, or develop an attachment to the inner visions; after all, visions are secondary and are not inner Realization.]
[자아의 태양 (초월 자아, 대우주)의 소리는 남자로 회부되고: 자아의 빛 조티 (진아, 소우주)는 여성으로 회부된다. 다시 말해서 조티(Jyoti)의 놀이 또는 내적 애착에 대한 개발에 흥미를 지니지 마라. 결국, 비전(계시, 환시)은 부차적인 것이고, 내적 실현은 아닌 것이다.
[It is sound, Om, or Nada, which helps the seeker to go beyond Bindu and merge into Oneness with Brahma, the ultimate Self].
[옴, 또는 나다의 소리는 구도자들이 빈두를 넘어 브라흐마, 궁극의 자아와 합일하게 도와준다.]I saw a pure Void, that is Brahma, the ultimate Self. The mind must be dissolved in It.
나는 순수하고 텅빈 브라흐마, 궁극의 자아를 보았다. 마음은 그 안으로 용해되어야 한다.
The mind should not be made outward. What's the benefit if the mind and the eyes are tranquil and not the body? Today, the breath does not come out, and a lot of addictions are generated.
마음을 외부로 향하게 하면 안 된다. 만일 마음과 눈이 평온하고 육체적이지 않다면 잇점은 무엇일까? 오늘, 무호흡이 이루어지면 크나큰 몰입 상태가 발생될 것이다.Merging in pure Voidness is called Samadhi.
순수 공간에 합일하는 것을 사마디라고 한다.Beyond Purushottam, the Supreme Being, there is Brahma, the ultimate Self.
푸루소탐(Purusottam)은 넘는, 최고 존재, 거기에 브라흐마, 궁극의 자아가 있다.Without being niskama, that is, totally detached, there is no possibility to be merged in Brahma.
니스카마(선한 카르마, 善業)의 존재가 없는 완전히 분리 상태로 브라흐마와 합일할 가능성은 없다.
[When the seer destroys his character as the seer and becomes one with the ultimate Self, then dualism is dissolved].
[예언자는 자신의 캐릭터를 부수고 궁극적인 자아와 하나가 되면, 이중성은 용해된다.]Voidness which is inside voidness is called great Voidness, Brahma.
무(無 텅빔) 안에 있는 무(無 voidness )는 위대한 공(空) 브라흐마라고 불린다.Satyayuga is the After-effect-poise of Kriya; tretayuga is the temporary After-effect-poise of Kriya; dwaparayuga is to practice Kriya; and when one does not practice I, it is kaliyuga for him.
사티야유가(Satyayuga)는 크리야 시행 후 효과 균형이고 트리타유가(tretayuga)는 크리야 수행 이후의 일시적인 효과 균형이다; 드와파라유가(dwaparayuga)는 Kriya의 실행이다; 크리야를 수행하지 않을 때, 그것은 그를 위한 칼리유가(kaliyuga)이다.When one transcends Basu, desires, he becomes Dev, the Lord; that is, he becomes Basudev, or Lord Krisna...
사람은 바수, 욕망을 초월 할 때, 그는 데바 주님이 된다; 즉, 그는 바수데바(Basudev) 또는 주 크리스나가 된다.One becomes Basudev when the basanas, the desires, are transcended. He is the Lord.
사람이 바사나스(basanas), 욕망을 초월할 때 바수데바(Basudev)가 된다. 그는 주님이다.A liar who cannot keep his word is not a good man; his father, that is, his Lord is also no good.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거짓말쟁이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 즉, 그의 주님도 좋아하지 않는다.The essence of Rama-mantra is to place the tongue into Talabya Kriya and continue to listen to the sound of Om.
라마 만트라의 본질은 탈랴바 크리야(Talabya Kriya)로 혀를 넣고 옴 소리를 듣기를 계속하는 것이다Inside this body, there is another body which is somewhat black.
신체 내면 거기에 다른 몸 약간 검은 또 다른 신체가 있다.Knowledge of the ultimate Self is to know Oneself by oneself.
궁극의 자기에 대한 지식은 스스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Looking at the middle of the forehead, which is above the nose and eyebrows, is a bit difficult; if one stabilizes on this, he attains the state of Samadhi.
코와 눈썹 위 이마의 중앙을 보는 것은 약간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그 위에 안정되면 그는 사마디(Samadhi)의 상태를 얻는다.Till Bhisma [grandfather of Kaurava and Pandava], that is, fear [in the light of Kriya Bhisma means fear of practicing Kriya], receives three arrows, that is, ida, pingala and susumna in his head [unite in the Kutastha], never becomes Sthira, tranquil; One should practice Kriya courageously.
브히스마[카우라바와 판다바의 할아버지]까지 그곳은 공포[크리야 브히스마의 빛 안에서 크리야 수련의 공포를 의미] 그의 두뇌 안에[Kutastha에 연합] 세 개의 화살 받는 그것은 이다, 핑갈라, 수슘나이다. 결코 Sthira, 고요하게 되지 않는다; 용감하게 크리야를 수련해야 한다.Nobody is a sinner; no one is holy either; if the mind is put into the Kutastha, then, there is no sin; otherwise, if the mind is outward, there is sin; in other words, when the mind is not in the Kutastha, it is in sin.
어느누구라도 죄인이며; 거룩하지 않다; 만일 마음이 쿠타스타(Kutastha)안에 계속 머문다면 죄가 없다; 그렇지 않고 마음이 외부로 치우치면 죄가 있다. 즉, 마음이 쿠타스타 내부에 머물지 않는 한 죄를 지을 수 있다.The old father [Babaji] is Lord Krisna.
존경하는 아버지[babaji]는 주 ‘크리슈나’이시다.I saw Saptarsi, seven Yogis (Bhrigu, Atri, Angira, Marichi, Pulastya, Pulaha, and Kratu; and four Manus (Sanaka, Sananda, Sanatan, and Sanat Kumar].
나는 사프타라시, 7요기(브히리구, 아트리티, 안기라, 마리치, 풀라스탸, 푸라하, 그리고 크라투와 마누스[사나카, 사난다, 사나탄, 그리고 사나트 쿠마]를 보았다.All sins are destroyed at the After-effect-poise of Kriya.
모든 죄들은 크리야 후 효과 균형으로 삭제된다.Abidya, ignorance, is the outward state of mind; Bidya, Knowledge, is the After-effect-poise of Kriya.
아비드야(Abidya), 무지는, 마음의 외적인 상태이다; 비드야(Bidya), 지식은 크리야 후 효과 균형이다.One who practices Pranayam truly loves all beings.
프라나야마를 수행하는 사람은 모든 존재를 진실하게 사랑한다.Slowly, slowly, all works are being done.
천천히, 천천히, 모든 작업이 수행되고 있다.Worldly beautiful things are poisonous. If you see them outwardly, they attract you; but if you see them inwardly, then, they are renounced. This is Maya, or restlessness.
세속의 아름다운 것들은 독이다. 만일 당신이 그들을 외적으로 볼 경우, 그들이 당신을 끌어 들인다; 만일 당신이 내적으로 그들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을 포기한다. 그것은 마야, 또는 불안이다.Let others go as they please, but you continue to practice Kriya; It will render you good; You will achieve the state of Tranquility, Sthirattva.
다른 이들은 그들이 즐거워하는 곳으로 가게 하라. 그러나 당신은 크리야 수련을 계속하라; 당신에게 선을 줄 것이다; 당신은 평온한 스틸라트바 상태를 성취할 것이다.One can say everything when the Kriya practice continues spontaneously at the six centers.
크리야 수행을 자발적으로 여섯 센터에 계속할 때 모든 일을 말할 수 있다.Nobody is a sinner; the mind itself is the sinner when it becomes outward away from the Kutastha.
아무도 죄인이 아니다; 마음 그 자체는 쿠타스타 바깥쪽으로 멀어질 때 죄인이 된다.Tranquil Moment beyond breath is Allah, that is, the House of Tranquility.
숨을 넘어 고요한 순간이 평정의 집 하느님(알라)이다.Brahma is Pure; It has not come out from anything; in other words, Brahma is ever Pure and Brahma is never tasted before by anyone.
브라흐마는 순수이다; 그것은 어느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즉, 브라흐마는 항상 순수하고 브라흐마는 누군가에 의해 결코 맛을 알게 되지는 않는다.
[Tasting something is possible from the state of dualism. But if one becomes one with Brahma, one becomes Brahma himself. So there is no possibility to taste Brahma. As a result, Brahma remains ever untasted, Pure.]
[무엇인가 맛본다는 것은 이원론의 상태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브라흐마 같은 사람이 되면 그는 브라흐마 자신이 된다. 그래서 브라흐마에게 맛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그 결과로, 브라마는 항상 맛을 보지 못하는 순수한 상태로 남아있다.]Do not be idle. Practice Kriya. Do not wait for advice to practice Kriya.
게으름 피우지 말고 크리야를 수련하라. 크리야 수련에 대한 조언은 기다려주지 않는다.Exhaust your breath in practicing Kriya. Eventually breath will be Sthira, Tranquil.
크리야 수련에 당신이 숨이 고갈되면 결국 숨이 평정되어 스티라(Sthira) 고요해질 것이다.
All realization is possible by the practice of the First Kriya. One is required to practice strictly according to the instructions received from one's Guru personally.
모든 실현은 첫째 크리야 수행으로 가능해진다.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받은 지침에 따라 엄격하게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스크리트어 고유명사에 대한 지식이 대단히 부족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오역이 감지된다면 알려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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