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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야 요가(Kriya Yoga) 수련소

스와미 사치다난다의 가르침 본문

내적인 삶으로

스와미 사치다난다의 가르침

성지 2013. 4. 11. 20:50

스와미 사치다난다 사라스와티의 가르침



- SRF 엔시니타스 사원을 방문한 스와미 사치다난다(Satchidananda)[각주:1]-



1. 카르마 요가

궁극적으로 모든 짐은 신이 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짐을 들고 싶어 한다.
우리의 에고는 말한다.
'내가 직접 그것을 해야 해.'

좋다. 그렇게 하라.
하지만 그럴 경우 그것에 대한 책임이 따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직면해야 한다.

당신이 자신을 위해 어떤 것을 원하는 순간,
그것을 얻을 때까지 당신은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분노에 싸일 것이다.

설령 당신이 그것을 얻었다 해도
그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그러나 당신의 바람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그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의 이익도 손해도 아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서 이기심을 제거하라.
일을 하되 상을 받으려고도 영광을 얻으려고도 하지 말라.
이기심 없이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행복은 당신의 것이다.

희생은 생명의 법칙이다.
초가 타면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동안 우리에게 빛을 준다.
향은 재가 되어가며 우리에게 향기를 준다.

모든 일을 신의 이름으로 하라.
그러면 어떤 것도 당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신의 손에 들린 아름다운 플룻이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개인적인 기대 없이
신을 위해서,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위해
어떤 이익된 일을 한다면 그것은 카르마 요가가 된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살며,
언제나 신과 신의 피조물에게 봉사한다면
그 행위는 자체로 예배가 된다.




2. 쿤달리니

초능력을 계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한된 오감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신이 당신에게 초월적인 능력을 주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신성한 어머니 자연은 당신이 성숙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성급하게 쿤달리니(척추의 기저부에 있는 우주 에너지)를 끌어 올리려고 하지 말라.

전기는 수천 볼트의 전압으로 발생된다.
우리는 그것을 곧바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전압을 낮춰어야만 한다.

가정에 도달하는 전기는 많이 낮춰져 있기 때문에 감전되더라도 큰 탈이 없는 것이다.
만일 변압하여 낮추지 않는다면 감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신의 힘도 그와 같다.
당신은 그것을 다루는 법과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쿤달리니는 척추에 있는 차크라들을 따라 뇌로 상승하여
특별한 영적인 능력들을 일깨운다.
쿤달리니를 성급하게 끌어올리는 것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

심장 아래의 차크라들은 동물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것들은 당신을 낮은 차원으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당신의 의식이 하위 차크라에 있을 때 쿤달리니가 각성될 경우
당신은 동물적인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쿤달리니는 당신이 정화되고 난 후 순조롭게 각성되도록 해야한다.

당신 내부에 있는 신성한 어머니 자연은
당신이 성숙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어머니 자연은 당신이 준비되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당신 손에 모든 것을 쥐어줄 것이다.

아직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골칫거리를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신의 힘을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신이 당신을 움직이도록 자신을 준비시켜라. 

당신이 정화되어 준비가 되면 쿤달리니의 힘이
스스로 각성되어 당신에게 모든 힘을 선사할 것이다.





3. 치구심

 만일 당신이 어떤 것들을 얻으려고 치구심(안달하며 구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것들은 당신에게 불안, 걱정, 두려움 등을 가져다 줄 것이다.
당신이 더 많이 얻으려 하고, 그것을 위해 더 많이 애쓸수록
당신은 더욱 두려워하게 된다.

당신은 자신의 감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그림자를 쫓아가려고 해보라.
당신이 빨리 달릴수록 그림자도 그만큼 빨리 달린다.

우리가 외부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와 같다. 
달리다 지쳤을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좋아. 그림자를 잡는 것은 불가능해. 그런 건 이젠 바라지 않을 거야.'

이런 마음 상태에서 일종의 초연함이 생긴다.
우리가 이제 되돌아 걸어갈 때
우리가 쫓던 그림자가 뒤따라온다.

이것이 삶의 비밀이다.

당신이 어떤 것들을 뒤쫓는다면
아무 것도 당신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족한 상태에서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뒤쫓지 않아도 그것들이 당신에게 다가온다.

그것들은 당신이 자기들을 괴롭히지도 구속하지도 않을 것이고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권력, 지위, 명성, 돈 등을 뒤쫓는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얻지 못할 것이다.
설령 어쩌다 얻게 되었다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것들이 스스로 당신을 따라오게 하라.
바다는 결코 강에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강들이 바다로 흘러가는 이유이다.
바다는 만족한다.
그것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4. 나쁜 생각

 어떤 구도자는 이런 고충을 토로한다.


“명상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불순한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그것들이 너무 강하고 무시무시한 것이라서 어떻게 억제해야 할지 당황스럽습니다.“

초보자의 경우 명상을 하기 위해 앉자마자
나쁜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명상을 할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많은 경우 구도자들이 명상을 중단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마음 속에 나쁜 생각이 일게 되면 당신은 몸서리친다.
이것은 당신에게 정신적인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당신은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당신은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들이 떠오르면 매우 괴로워한다.

이것 또한 정신적인 발전의 표시이다.

명상 중에 나쁜 생각이 일어나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당신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계속 명상을 한다면
그런 부정적 생각들이 점차 사라질 것이다.


긍정은 언제나 부정을 이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용기는 두려움을 굴복시킨다.
인내는 분노를 굴복시킨다.
사랑은 미움을 굴복시킨다.
순수한 마음은 욕정을 굴복시킨다.

명상은 나쁜 생각들을 태우는 불이다.
나쁜 생각들을 몰아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지켜보라.
언제나 주의 깊게 마음을 관찰하라. 항상 깨어 있으라.

만일 당신이 원숭이를 강제로 쫓아내려고 한다면
원숭이는 성을 내며 달려들려고 할 것이다.
당신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실망하지 말라.
규칙적으로 계속 명상하라.
그러면 나쁜 생각들이 줄어들 것이고 결국 모두 사라질 것이다.





5.역할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보잘것 없는 존재에 불과한 걸.'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만일 당신이 그렇게 보잘 것 없고 불필요하다면 신은 당신을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람과도 동등하다.
세상의 누구도 더 열등하거나 뛰어나지 않다. 우리는 공통의 계획하에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장기판 위의 장기알들과 같다.
졸이나 왕이나 다 같은 나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장기판 위에 놓이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모든 장기알들이 자기 마음대로 이동하고 싶어한다면
그것은 장기판이 아니라 난장판이 될 것이다.

장기판의 모든 알들은 같은 손에 의해 움직인다.
게다가 놀이가 계속되는 동안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일단 게임이 끝나면 모두 같은 상자 속으로 되돌아간다.
상자 속에서는 왕도 졸도 없다. 그저 같은 나무 조각들일 뿐이다.

이러한 진리를 마음 속에 지니고 우리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삶은 멋진 게임이 될 것이다.

당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신이 당신에게 맡길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단지 개인이 아니라 전체의 일부이다.
신은 광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당신을 통해 그것이 드러나게 하라.




5. 종교의 다양성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당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라.
원하는대로 그 음식의 이름을 붙여라.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비난하지는 말라.
토마토 소스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해서
이태리 요리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이 필요하다.
여러 종교는 각기 서로 다른 정신적 레스토랑이다.

교회건 시나고그[각주:2]건 원하는 곳에 거주하라.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당신의 취향, 기질, 능력에 맞게 당신의 방식을 선택하라.
하지만 다른 길을 따르는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힌두교, 기독교, 유대교 등 세상의 모든 종교는
여러 가지의 장식들이다.
표면적인 것에 대해서는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것들은 진리를 표현하는 다양한 디자인일 뿐이다.

예수에게 기독교를 창시했는지 물어보라.
붓다에게 불교를 창시했는지 물어보라.

그들은 기독교가 무엇인지 불교가 무엇인지 모르며,
단지 진리만을 알 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양한 종교들은 대양으로 흘러드는 여러 강들과 같다.

종교에 대해 우리는 보편적인 접근을 해야만 한다.
인생의 목적은 신을 깨닫는 것 또는 행복을 얻는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얻는다면 선택한 방법이 무엇이든 상관 없다.

신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들 이면에 있는 신은 동일하다.

우리는 어떤 곳의 바다는 태평양, 다른 곳의 바다는 대서양 혹은 인도양으로 부른다.
하지만 바닷물은 모두 같다. 당신이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 이면의 바다를 보라.

진리도 그러하다. 진리는 어떤 형태, 어떤 이름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모든 종교의 배후에 있는 진리는, 눈을 가진 자는 누구나 보게 되고

귀를 가진 자는 누구나 듣게 된다.




6. 베품

 신은 전혀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을 원한다.

그런 사람은 신의 지고한 뜻에 의해 쓰임을 받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차는 누구에게도 연료를 채워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차는 연료를 채울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 걱정은 차 주인의 몫이다.
왜냐하면 차를 이용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계속 준다면 섭리가 당신을 돌볼 것이다.
젖소가 우유를 내준다면 농부는 그 젖소를 돌볼 것이다.
만일 우유를 주지 않는다면 농부는 그 젖소를 처분할 것이다.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는다면 우리는 그것에 물을 주고 양분을 주며 울타리를 쳐준다.
그러나 그것이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잘라 버린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을 돌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계속 주어라. 섭리가 당신을 돌볼 것이다.
당신을 주는 것이 당신 자신을 완전히 잃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물방울이 바다에 자신을 온전히 줄 때
물방울 자체가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 물방울은 물방울이라는 이름을 잃었다.
그것은 물방울로서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바다가 되었다.

전체와 하나가 되어라.
이탈자가 되지 말라.
자신이 분리된 물방울이나 분리된 조각이 되지 않게 하라.
당신이 자신을 작은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욱 작아질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고 희생하며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
그것이 요가의 비밀이다.
당신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행복은 자동적으로 올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어떤 아사나, 호흡법, 찬송, 명상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생명 없는 시체의 장식에 불과하다.
시체를 장식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7. 기도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신은 우리의 요구를 들어 주신다.

우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간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필요없다.
당신과 신 사이에 당신의 교만함이 가로 막고 있지 않도록 하라.

당신은 어린아이 같이 되어야 한다.
울부짖으며 간구해야 한다.
진심으로 울부짖어라.

"신이시여, 저를 도와주소서. 제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너무나 부족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눈물을 흘려라. 당신의 눈물을 맛보아라.

세속적인 요구를 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 신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것들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이런 발전적인 기도가 나오게 될 것이다.

"신이시여, 저는 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에게 좋지 않은 것도 달게 받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것이 옳은지 알고 계십니다.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당신에 대한 믿음과 헌신뿐입니다."




8. 내일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을 만족스럽게 살라.

인간은 내일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니 계획을 세워라.

그러나 당신의 계획은 단지 당신의 계획일 뿐이다.
그것은 신이 좋다고 할 때만 통과된다는 것을 알라.

계획을 세워라. 신이 승인한다면 가서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겨라.
만일 일이 당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신이 승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라.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 세상사를 잊어버리고 아기와 같이 되어라.
우리는 매일 밤 죽었다가 다음 날 다시 태어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당신의 잠은 멋질 것이다.



9. 신과 세상

 모든 것이 신이다.

하늘이나 제단에서만 신을 찾지 말라.
당신의 개, 돼지를 섬겨라. 병든 자, 가난한 자들을 섬겨라.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만물을 창조했다.
신은 하늘, 바다, 땅 등 모든 것들을 만들었다.

신은 세상을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다른 무언가로부터가 아니라 신 자신으로부터이다.
신은 자신으로부터 만물을 창조했다.

다시 말해 신 자신이 세상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신이 모든 곳에 편재해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모든 것이 신이라면 세상에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다.
그것들은 모두 신이다.

세상을 깨달으라.
그러면 신을 깨닫게 될 것이다

  1. 스와미 사티다난다 사라스와티(Satchidananda Saraswati 1944-2002)는 1914년 남부 인도 타밀 나두 주(州) 포다누르 인근 작은 마을 코임바토레에서 출생한 라마스와미 군데르(Ramaswamy Gounder)이다. 아버지 칼리야나순다람 군데르와 어머니 스리마티 벨람마이는 경건하고 신심이 깊어서 집에는 항상 시인, 음악가, 철학자, 점성술사들이 모였고 지나가던 수도승과 성자들이 숙식하고는 했다.

    부부는 집에 온 성자들을 보면서 저런 영적인 성품을 지닌 고결한 자식을 얻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었다. 그래서 부부는 함께 60 마일을 여행해서 사두 스와미갈의 아쉬람으로 갔고 그로부터 신성한 빛을 불러오는 만트라를 받았다. 어머니 스리마티는 소망하는 고급한 영혼을 낳기 위해 수개월 동안 끊임없이 만트라를 외웠고 그 결과 사티야난다가 태어났다.

    사티야난다는 유년시절부터 영적인 성향이 강했고 신에 대해 매우 헌신적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농업 대학을 졸업한 후 모터사이클 수입 판매상 삼촌의 회사를 다니다가 23세 때 인도 국영 전기공사의 관리가 되었다. 이 무렵 그는 결혼을 했고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결혼 5년 후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자 그는 자식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인도 전역으로 영적인 여행을 떠났다. 그는 여러 사원에서 명상하고 많은 영적 교사들 곁에서 공부했다.

    진정한 스승을 찾는 과정에서 그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아쉬람에 머물며 공부했지만 라마나 마하리쉬가 죽기 전 아쉬람을 떠나게 된다. 그 후 히말라야 성스러운 도시 리쉬케시로 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마침내 그의 구루 시바난다를 만나게 되었다.

    1949년 시바난다는 그를 스와미 교단에 입문시키고, 그에게 ‘사치다난다 사라스와티(Satchidananda Saraswati)’라는 법명을 내렸다. 시바난다는 그를 수년 동안 가르친 뒤 인도 각지로 보내 요가의 지혜를 전파하도록 했다.

    1953년 사치다난다는 스리랑카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 첫 번째 사치다난다 아쉬람이 세워졌다. 그는 거기서 13년 동안 가르쳤다.

    그러던 중 1966년, 미국인 제자들의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하였다. 그는 이 방문을 계기로 미국으로 이주해서 정식으로 시민권을 얻게 되었고, 그 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치다난다는 지상의 모든 인종과 종교 사이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의 모토는 ‘진리는 하나이지만 길은 많다’이다. 그는 영속에서 인간들 모두는 하나라고 말하며 영적인 일체성을 가르쳤다.

    사치다난다는 하타요가, 즈나나 요가, 박티 요가, 카르마 요가, 만트라 요가 등을 하나로 종합하여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이런 독특한 요가 스타일을 ‘인티그럴 요가(Integral Yoga)’라고 불렀다. 종합 요가 또는 통합 요가라는 의미이다.

    그는 인티그럴 요가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인티그럴 요가는 한 인간의 모든 차원들(육체, 마음, 영 등)을 계발하기 위한 다양한 수련법들을 융통성 있게 종합한 것이다. 그것은 한 인간의 완전하고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다양한 요가의 갈래들을 통합한 과학적인 체계이다.”

    그가 설립한 인티그럴 요가회(Integral Yoga Institute)는 전 세계적으로 40개가 넘는 센터들을 가지고 있다. 사치다난다의 아쉬람, 요가빌(Yogaville)은 버지니아의 버킹엄에 있다.

    1986년, 그는 세계 평화와 종교 화합을 기원하면서 요가빌에 ‘LOTUS’(진리의 빛 유니버설 쉬라인Light of Truth Universal Shrine)를 건립했다. LOTUS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표방하면서 세계의 모든 종교들을 위해 봉헌되었고 전 세계의 다양한 종교 제단들이 있다. LOTUS는 어떤 종교를 믿든 누구나 와서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50년 이상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가르침을 펴던 그는 2002년 남부 인도 타밀 나두에서 마하사마디에 들었다. [본문으로]
  2. '시나고그(Synagogue)'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만남의 장소(a place of meeting)'란 뜻을 가진 히브리어 'Bet Hakeneset'의 번역어이다.

    회당의 시초는 BC 586년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유대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지 세워지기 시작한 이런 회당(會堂)은 유대교의 대표적 집회장소로서 지금도 전세계 어디에든지 유대인이 있는 곳이면 회당은 반드시 존재한다.

    시나고그에서는 예배의식, 각종 집회, 교육훈련 등이 이루어지며 유대인의 종교 뿐 아니라 행정, 교육 그리고 사교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 자료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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