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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본문
성 빈첸시오 드폴 사제(1581~1660)
빈첸시오 드 폴은 프랑스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도움으로 공부한 그는 사제가 되어 파리에서 본당 사목자로 활동하였다. 빈첸시오 신부는 한때 여행 도중 해적에게 잡혀 노예 생활까지 하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는 고아와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고 자선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였기에 모든 자선 단체와 병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의 정신과 활동을 계승하려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1833년 파리에서 설립되어 현재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늘의 미사》
제1독서
<먼지가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이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전에,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 코헬렛서 11,9ㅡ12,8
9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 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3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4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5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8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오늘의 묵상 』
오늘 제1독서의 「코헬렛」은 우리에게 ‘젊음의 날’에 즐기라고 권고하며, 허무를 인간 조건으로 안고 사는 우리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길은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세월을 ‘지금’ 즐기는 데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권고는 로마 시대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에서 유래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날을 잡아라!)이라는 격언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이를 ‘쾌락주의’에 대한 권유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이어지는 두 가지 구체적인 권고를 들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하고 권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판자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기억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과 하느님을 알고 기억하는 것은 서로 다르고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코헬렛」은 ‘젊음’이 상징하는 ‘현재’에 하느님을 경외하며 그분 안에 온전히 머무는 것이 허무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체험하는 진정한 ‘삶의 기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자에게 ‘현재’는 ‘하느님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자기의 노고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느끼는 행복’(코헬 2,24 참조)이 충만한 상태를 뜻합니다. 그는 ‘현재’에 머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고통의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코헬렛」의 ‘행복의 철학’이 도달한 이러한 결론에 감탄하고 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답에는 여전히 허무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허무와 좌절을 넘어 근심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지난 일에 대한 감사와 앞날에 대한 희망 없이 그저 현재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누리는 현재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의 기억, 사랑 때문에 누군가에게 헌신하려는 결단, 나를 기다리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수렴되는 자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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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짜 나의 문제에 대한 내용을 정면으로 마주쳐야 한다. (하느님께 부르짓어야 한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토끼굴에 들어가면 다칠 위험은 없을 지라도 호랑이 잡을 기회는 평 생 없게 된다. 나의 문제를 회피하면 오히려 쾌락주의에 빠질 위험만 도사린다. 어떤 위험이 진짜 위험일까? 정신이 다치는 것은 몸이 다치는 것 보다 치료가 어렵다.
2.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밖에 있지 않고 나에게 있다. (‘내’ 부담을 내려야 한다)
대부분 과거의 어떤 ‘트라우마’ (큰 사건, 사고에서 느낀 충격) 에서 해방되지 못한 상태 로 있는데 아쉽게도 자신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데 그에 대한 작은 방법으로는 내게 닥친 문제를 일단 ‘내려놓는 것’이다. 내려놓지 않 으면 아무 길도 보이지 않는다. 움켜쥐면서 전전긍긍하는 태도는 문제 자체에 집착 해 버리기 쉽기 때문에 그 집착의 노예가 될 뿐이다. ‘내려놓는 다’는 것은 ‘나쁜 의미로서 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 후퇴가 아니라 2보를 위한 1보 후퇴이다. 놓 지 못하는 한 다른 것이 안길 틈은 전혀 없는 것이다. 비어야 채워진다. 일단 놓아야 한다.
3. 변화에 대한 갈망이 커야 한다. (주변의 도움을 적극 청해야 한다)
변하기를 원한다고 다 변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어떤 댓가를 치루고서라도 변화하기를 매우 갈망’해야 한다. 그것은 변하고자하는 원의와 더불어 특별히 ‘용기’를 필요로 한다.
4. 진정한 변화란 한순간에 갑자기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인내심은 필수다. (인내하라)
만일 변하기를 간절히 원해서 그 변화목적을 달성 했다고 하자. 하지만 인내의 과정 없 이 쉽게 얻은 변화는 곧 시들어 버리고 오히려 처음보다 더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다.
변화를 왜 하려는가? 좀 더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과의 공동선을 찾아 행복해 지려고 하 는 것 아닌가? 이런 것은 왠만한 성인 군자들도 얻기 힘든 것인데 평범한 우리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단박에 얻을 수 있겠는가? 변화의 본질은 바로 완성의 단계(일치 기)로 가는 데 있다. 신자들의대부분이 일치기까지는 못가고 생을 마간 한다는 사실을 염두하라!
5. 인생은 어차피 나그네 삶이다.
“아니다. 인생이란 결국 맘껏 즐기면 놀고먹고 마시고 쾌락을 찾으면서 살아야 한다” 라고 생각 하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라. 창피해서라도 못 들 것이다. 조선 후기 관 료들이 천주교를 탄압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천주교는 이 세상을 ‘고통의 과정’이라 고 보았기 때문인데, 관료들은 “그렇다면 신이 세상을 왜 창조 했느냐?고통의 세상이면 없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니냐?” 라며 ‘후세관’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성경 처음 읽는 중학생이 “하느님이 왜 쓸데 없이 선악과를 만들었나?” 하며 갖는 매우 초보적인 궁금증 아닌가! 하느님의 생은 인간의 생을 초월하는데 이것을 이해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가 죄를 짓는 것이다. 죄를 짓고 진정한 의미의 무거운 고통을 느끼며 살기를 원하는 가?? 아니면 예수님의 가벼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 나은가!
6. 자기 나이 만큼의 숫자로(20세면 20일, 70세면 70일..) 촛불을 켜고 예수 성심 상본의 심장을 보면서 간절히 묵상한 것을 예수님께 바치는 훈련 같은 것을 해서 자신이 왜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원인을 살펴야 한다. 변화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인간이란 예외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정리하면 ...
변화를 원한다고 섣불리 변화를 추구하지 말고, 일단 변화 추구의 집착과 욕심에서 부터 해방 된 다음,(<--중요)
그야말로 간절한 원의와 용기를 가지고 변화를 맞이 하여야 한다. 오늘 제1독서의 「코헬렛」은 우리에게 ‘젊음의 날’에 즐기라고 권고하며, 허무를 인간 조건으로 안고 사는 우리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길은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세월을 ‘지금’ 즐기는 데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권고는 로마 시대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에서 유래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날을 잡아라!)이라는 격언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이를 ‘쾌락주의’에 대한 권유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이어지는 두 가지 구체적인 권고를 들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하고 권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판자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기억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과 하느님을 알고 기억하는 것은 서로 다르고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코헬렛」은 ‘젊음’이 상징하는 ‘현재’에 하느님을 경외하며 그분 안에 온전히 머무는 것이 허무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체험하는 진정한 ‘삶의 기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자에게 ‘현재’는 ‘하느님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자기의 노고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느끼는 행복’(코헬 2,24 참조)이 충만한 상태를 뜻합니다. 그는 ‘현재’에 머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고통의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코헬렛」의 ‘행복의 철학’이 도달한 이러한 결론에 감탄하고 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답에는 여전히 허무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허무와 좌절을 넘어 근심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지난 일에 대한 감사와 앞날에 대한 희망 없이 그저 현재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누리는 현재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의 기억, 사랑 때문에 누군가에게 헌신하려는 결단, 나를 기다리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수렴되는 자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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